처음 Instinct를 보면서 눈에 들어온 건 편한 온보딩과 빠른 ‘wow moment’였다. 그런데 창업자 인터뷰를 보고 나니, 가입한 뒤에 벌어지는 일이 더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이 제품을 믿고 자기 일을 맡기기 시작할까.
공개된 인터뷰에서 창업자는 당시 하루 10~11% 성장하고 있고, 사용자의 40%가 3주 안에 신용카드 정보를 공유한다고 말했다. 민감정보를 하나 이상 연결한 사용자의 유지율은 약 80%, 거래액은 연환산 약 10억 달러 수준이며 절반가량이 여행 관련이라고 한다.
1. 가입보다 중요한 건 그다음의 위임
에이전트를 쓰는 과정은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과정과 닮았다. 작은 일을 잘하면 조금 더 중요한 일을 맡긴다. 그러다 이메일과 캘린더를 연결하고, 필요하면 결제 권한도 준다. 맡길 수 있는 일이 늘어나니 다시 찾게 된다.
이렇게 보면 연결한 계정 수가 반복 사용을 예측하는 지표일 수 있다. 다만 계정을 많이 연결해서 오래 쓰는 건지, 원래 만족한 사람이 더 많이 연결하는 건지는 구분해야 한다. 결국 보고 싶은 건 연결 숫자보다 그 연결로 매주 어떤 일을 끝내고 있느냐다.
Instinct가 잘한 것도 처음 맡겨볼 만한 일을 제시하고, 그 일을 잘 끝내 다음 위임으로 이어지게 만든 데 있지 않을까.
더 좋은 모델이 나와도 이런 관계가 바로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내 취향뿐 아니라 어떤 일은 알아서 해도 되고 어떤 일은 꼭 물어봐야 하는지까지 익힌 비서라면, 옮길 때 다시 맞춰가야 할 게 많다.
Instinct가 가까운 사람들의 에이전트를 연결하려는 것도 흥미롭다. 배우자와 주말 일정을 맞추고 공동창업자와 미팅을 잡는 일을 양쪽 비서가 처리한다면, 함께 쓸 이유가 생긴다.
다만 모두가 같은 제품을 써야만 할까. 다른 회사의 에이전트와도 잘 연결된다면, 사용자를 가두기보다 어디서든 잘 일하는 비서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2. 돈은 누가, 무엇에 대해 낼까
Instinct는 지금 무료이고, Muse는 무료 사용량 외에 월 20달러와 100달러 요금제를 제공한다. 구독은 이미 시작됐다.
Meta는 Muse의 대화와 가상머신 데이터를 광고 시스템에 공유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Muse가 얻은 정보로 곧바로 광고 효율을 높이니 수익화가 급하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구독 외에도 길은 있다. 예약이나 구매를 연결해준 대가로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받거나, 비용을 아껴준 대가로 고객에게 절감액 일부를 받을 수 있다. 결제 인프라와의 제휴도 가능할 것이다.
다만 거래액이 크다고 매출이 큰 것은 아니다. 누가 수수료를 내고, 그중 얼마가 에이전트 회사에 남는지 봐야 한다. 나에게 가장 좋은 상품과 비서에게 수수료를 가장 많이 주는 상품이 다를 때 무엇을 추천할지도 중요하다. 돈을 버는 방식이 어렵게 쌓은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3. 범용 비서가 전문 서비스를 부르는 시장
그렇다면 새 스타트업의 자리는 어디일까. 나는 범용 비서 몇 개만 남고 나머지는 사라질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모바일로 사용 환경이 바뀌던 때처럼, 사람이 직접 앱을 찾아다니던 일을 에이전트에 맡기기 시작하면 서비스의 형태도 바뀔 수 있다. 매일 사람이 열어보는 앱이 아니어도, 비서가 계속 일을 맡기는 서비스라면 사업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달에 이사할 집을 알아봐줘”라고 하면 내 비서는 예산과 출퇴근 거리, 가족의 취향을 정리한다. 실제 매물을 확인하고 중개사와 연락해 집 볼 시간을 잡는 일은 부동산 전문 에이전트에 맡긴다. 계약 단계에서는 전문가의 검토가 포함된 법률 서비스로 연결할 수 있다.
이런 분업을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서 전문 서비스의 경쟁력은 부동산 질문에 답을 잘하는 정도로는 부족하다. 실제 매물을 확인할 수 있는지, 약속을 잡을 수 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너는 변호사야”라는 프롬프트와, 전문 지식에 검토 절차와 책임질 사람까지 갖춘 서비스는 다르다. 범용 모델이 좋아져도 굳이 그 업체에 일을 맡길 이유가 있어야 한다.
4. 에이전트가 일을 하려면 필요한 것들
전문 서비스 외에 인프라 기회도 있다. Exa는 에이전트용 검색을 제공하고, Stripe는 Link의 에이전트 지갑이 Muse·Instinct·Grok Bot의 결제에 쓰인다고 밝혔다.
검색과 결제에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다른 에이전트에게 일을 맡길 때 누구를 고르고 어떤 권한을 줄지 정해야 한다. 결제가 중복되거나 취소되면 처리해야 하고, “완료했다”는 답이 왔을 때 실제 시스템에도 반영됐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런 공통 문제를 잘 푸는 회사는 여러 에이전트에 서비스를 팔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모두에게 필요한 기능이라고 모두 좋은 사업은 아니다. 기존 플랫폼이 기본 기능으로 넣기 어려운 이유나, 별도 업체에 돈을 낼 만큼 나은 점이 있어야 한다.
5. 로컬 에이전트도 볼 필요가 있다
Amazon이 Muse의 쇼핑 접근을 차단한 사례는 있다. 다만 로컬에서 실행한다고 차단이 불가능해지는 것은 아니다. 서비스 쪽에서도 자동화된 접근을 탐지하고 제한할 수 있다.
그래도 로컬 에이전트에는 분명한 용도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이미 쓰는 앱과 파일, 회사 컴퓨터에만 있는 프로그램에서 일을 해야 하는 경우다. 공식 연동이 없거나 클라우드에서 접근하기 어려운 업무라면 로컬 실행의 가치가 커진다.
로컬 실행과 로컬 추론은 별개다. 내 컴퓨터에서 앱을 조작하더라도 판단은 클라우드 모델이 할 수 있다. 결국 어느 한쪽만 쓰기보다 업무에 맞춰 로컬·클라우드·공식 연동을 섞는 형태가 자연스럽지 않을까.
6. 개인 비서에서 회사의 업무 에이전트로
마지막으로 관심 가는 건 기업이다. Grok Bot for Enterprise도 업무용 봇이 연결된 계정에서 일하고, 영업·마케팅·재무 등 여러 부서의 업무를 처리하는 방향을 보여준다.
회사에서는 여러 소프트웨어에 로그인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어떤 고객을 우선할지, 할인은 누가 승인할지, 계약과 청구가 다르면 누구에게 넘길지 알아야 한다.
주문 하나만 처리해도 메일을 읽고, 계약을 확인하고, ERP에서 재고와 가격을 보고, 예외 승인을 받아야 할 수 있다. 각 단계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것과 납품·청구까지 끝내는 것은 차이가 크다.
에이전트를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관리할 일도 늘어날 것 같다. 누구의 권한으로 일하는지, 담당자가 퇴사하면 누가 인계받는지, 프로세스가 바뀌면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정해야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Automation Engineer나 FDE처럼 고객 안으로 들어가 일을 함께 풀어야 할 수도 있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고객마다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지, 여러 고객에게 재사용할 수 있는 연결·승인·평가·예외 처리 방식이 쌓이는지.
Instinct와 Muse가 어디까지 갈지는 더 봐야 한다. 다만 이들을 보며 떠오르는 사업 아이디어를 또 하나의 범용 비서로 한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사람들이 비서에게 맡기기 시작한 일 중, 아직 누군가 제대로 끝내줘야 하는 일이 꽤 많을 것 같다.
에이전트의 세상 이제 시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