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화 포스터 디자이너 박시영의 인터뷰를 여러 편 봤는데,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의외로 하나의 세계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는 꽤 거친 환경에서 자랐다. 그런데 자신의 결핍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결핍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결핍은 그냥 불리한 조건일 뿐이다. 다만 이미 생겨버린 결핍을 지울 수 없다면, 그 경험이 만들어낸 관점 중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는 있다.
결핍은 advantage가 아니라 raw material에 가깝다.
정석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남들이 아는 정답을 몰랐기 때문에 때로는 남들과 다른 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결핍보다 오히려 고립이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영화계에서 성공했고 돈도 벌었다. 하지만 성공했다고 어린 시절부터 쌓여 있던 문제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외부 환경은 바뀌었지만 내부의 패턴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래서 그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전환점은 첫 번째 흥행작이나 경제적 성공보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일이었던 것 같다.
혼자 있을 때는 내가 행동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얼마든지 자기 행동을 합리화할 수 있다.
그런데 누군가를 정말 사랑하게 되면 새로운 관측점이 생긴다.
내 행동 때문에 상대가 상처받는 것이 보이고,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고 정당화하는 것보다
“이 사람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진다.
그러면서 목적함수가 바뀐다.
자기연민에서 타인에 대한 책임으로.
사랑은 자기 문제에 대한 정보를 하나 더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실제로 고쳐야 할 이유까지 만들어준다.
그래서 사람을 바꾸는 데에는 information보다 relationship이 더 강력할 때가 있다.
그가 한 말 중 또 기억에 남았던 것은 “재능은 일회용이다”라는 말이었다.
재능이 있으면 어떤 일을 처음부터 잘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문제가 계속 등장하면 결국 재능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오래 살아남게 만드는 것은 계속 해보고, 실패하고, 지루함을 견디고, 반복하면서 경험 속의 패턴을 각인하는 것이다.
콘텐츠 100개를 한 번씩 보는 것보다 좋은 것 하나를 100번 보는 것.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왜 이 순서인지,
어느 순간 느낌이 바뀌는지,
내가 만든다면 무엇을 다르게 할지를 계속 뜯어보는 것.
정보를 아는 상태에서 감각이 체화된 상태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이 이야기는 AI 시대에 더 중요하게 들린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비용은 계속 낮아지고 있다.
생산의 가치는 내려가고, 선택과 판단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올라간다.
앞으로 더 희소해지는 능력은 많이 아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결과물 앞에서 무엇이 좋은지 빠르게 알아보는 taste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taste 역시 타고나는 것보다 반복 속에서 만들어진다.
삶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남들처럼 되기 위해 자기 결함을 전부 지울 필요는 없다. 동시에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니까”라는 말로 자기 변화를 막아서도 안 된다.
고칠 것은 고치되,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서 생긴 모든 흠을 없애려고 할 필요도 없다.
결핍, 기억, 열등감, 취향은 사람마다 다른 training data다.
모두가 같은 정답을 배우고 같은 결함을 지워나가면 오히려 비슷한 사람이 된다.
독창성은 새로운 것을 억지로 추가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다른 삶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에서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그가 말하는 ‘나잇값’에 대한 생각도 공감하면서 들었다.
몇 살에는 결혼해야 하고,
얼마를 벌어야 하고,
집이나 차가 있어야 하고,
어떤 옷과 취미는 이제 그만둬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 동년배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상대적 지위 게임에 가깝다.
반면 진짜 나잇값은 다른 데 있다.
내가 한 선택의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내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지 않는가.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가.
내가 선택한 사람과 일에 책임질 수 있는가.
conformity(순응)와 maturity(성숙)는 전혀 다른 문제다.
박시영의 삶 전체를 보면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있다.
어린 시절 그는 어느 순간
“이대로 있으면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하고 환경을 떠났다.
사람은 의지만으로 미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보이는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른다.
그래서 인생을 크게 바꾸고 싶을 때 의지를 강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환경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고, 자신이 노출되는 세계를 바꾸는 것.
환경이 달라지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나’의 집합 자체가 달라진다.
결국 이 인터뷰들에서 내가 가장 좋았던 메시지는 이것이었다.
좋은 삶은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 만드는 결함 제거 최적화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변해야 할 때는 변하면서도,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생긴 고유한 무늬까지 전부 지우지는 않는 것.
그리고 혼자 완결된 인간이 되려고 하기보다, 나를 비춰주고 때로는 수정하게 만드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
인간은 좋은 존재라서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약한 존재라 혼자서는 완결될 수 없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https://youtu.be/LczhU1kPNx8?si=mR2xPuDYMlFXArQ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