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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멈추면 절반의 분석에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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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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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초과이윤은 속성상 집중된다. 메모리 기업 주주, 핵심 엔지니어, 수도권 자산 보유자처럼 이미 생산자산에 접근한 계층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매우 큰 수혜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상당수 중간층은 원화 강세에 따른 구매력 개선, 제한적 재정 이전, 일부 자산 상승 정도의 간접효과만 누릴 수 있다.
나라는 부유해져도 그 부의 분포는 자동으로 확산되지 않는다. 한국은 그간 성장에는 강했지만, 성장의 과실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데에는 약했다. AI 시대의 핵심 질문은 단순한 성장률이 아니라,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안정화할 것인가에 달려 있다.

• AI시대 한국형 국가의 재설계

기존의 해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공일자리 확대, 다른 하나는 복지 이전지출 확대다. 둘 다 필요하다. 그러나 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AI가 루틴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는 시대에는 단순 고용 유지 중심 정책만으로 장기적 활력을 만들기 어렵다. 공공일자리는 AI가 대체할 일자리를 세금으로 연장하는 것에 가까워지고, 그것은 분배가 아니라 유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인간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방식이 무엇인가, 그리고 국가가 그 전환 비용을 어떻게 지원하는가다. 여기서 두 개의 축이 나온다. 창업과 문화다.
AI 도구의 민주화는 창업의 진입장벽을 빠르게 낮추고 있다. 과거에는 자본과 조직과 기술 인력이 있어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제는 개인의 아이디어와 판단력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 AI는 소규모 팀에게 과거 대기업 수준의 생산성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누구에게나 생애 1회 창업 기회 보장, 실패 후 재기 안전망, AI 기반 창업 교육, 지역 단위 창업 인프라 구축 같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다. ‘창업 as a success’가 아니라 ‘창업 as an experience’로의 문화 확산. 이것은 단순 복지가 아니라 AI 시대 생산성 정책이다. 공공일자리 예산의 일부를 여기로 돌리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분배 효과를 만든다.

문화는 더 근본적인 차원의 문제다. AI가 생산과 실행을 대체할수록 인간에게 남는 것은 관계, 감각, 표현, 의미 같은 영역이다. 문화는 AI 시대의 주변 산업이 아니라 인간 고유 영역에 가까워진다.
한국은 이미 K컬처를 통해 세계적 문화 생산 역량을 증명했다. 예술 지원, 콘텐츠 산업, 로컬 커뮤니티, 창작 생태계를 단순 여가 정책으로 보는 시각은 AI 시대와 맞지 않는다. 문화는 분배 정책이자 전략산업이다. AI 시대에 인간다운 삶의 밀도를 설계하는 것이 곧 국가 경쟁력이 된다.

저출생·고령화는 이 모든 시나리오의 가장 큰 구조적 제약이다. 이민은 선택이 아니라 전략 변수다. 위로는 AI·반도체·로보틱스 분야의 글로벌 기술인재를 끌어와야 한다. 풀스택 AI 인프라 생태계가 있는 나라이니 인재가 몰릴 가능성이 생겼다. 창업비자, 영주권 패스트트랙, 기술인재 특별 트랙을 만들면 한국은 아시아의 새로운 인재 허브가 될 수 있다.

아래로는 고령화 사회에서 필수 노동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돌봄 인력이 필요하다. 단순 노동 수입이 아니라 정주 가능한 구조로 설계되어야 한다.

• (가칭) 국민배당금 — 새로운 사회계약
앞의 논지들을 수긍한다면, 재정 문제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AI 인프라 공급망에서의 전략적 위치가 구조적 호황을 만들고, 그것이 역대급 초과세수로 이어진다면 — 그 돈을 어떻게 쓸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의당 고민해야 할 설계의 문제다.

한국은 이미 비슷한 장면을 경험했다. 2021~22년 반도체 호황기의 초과세수는 사전에 설계된 원칙 없이 그때그때 소진됐다. 이번 사이클의 규모는 그때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클 가능성이 있다. 그걸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흘려보내는 것은 천재일우의 역사적 기회를 허비하는 일일 수 있다.

물론 다른 선택지도 존재한다. 초과세수로 국가부채를 줄이자는 주장도 가능하고, 국부펀드 형태로 장기 비축하자는 주장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실제로 한국은 이미 상당한 외환보유고와 KIC 같은 국부펀드 구조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단순한 국가 재무건전성만이 아니다. AI 시대의 초과이윤이 사회 내부의 K자 격차를 구조적으로 확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초과이익의 일부를 현세대의 사회 안정성과 전환 비용 완화에 사용하는 것 역시 단순한 분배가 아니라 체제 유지 비용의 성격을 갖는다.

여러 참고모델이 있다. 노르웨이는 1990년대 석유 수익을 국부펀드에 적립하고, 그 운용 수익을 재정 원칙에 따라 사회 전체에 환원하는 구조를 설계했다. 자원 호황을 일시적 횡재로 소비하지 않고 장기적 사회 자산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국이 처한 상황은 성격이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구조적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제도화할 것인가.

이 글에서는 그 원칙에 가칭 ‘국민배당금’이라는 이름을 붙이고자 한다. 핵심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원칙이다. AI 인프라 시대의 과실은 특정 기업만의 결과가 아니다. 반세기에 걸쳐 전 국민이 함께 쌓아온 산업 기반 위에서 나온다. 그렇다면 그 과실의 일부는 전 국민에게 구조적으로 환원되어야 한다 — 이것이 설계의 정당성이자 원칙이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은 이 원칙 위에서 논쟁해야 한다. 청년 창업 자산으로 갈 것인가, 농어촌 기본소득으로 갈 것인가, 예술인 지원으로 갈 것인가, 노령연금 강화로 갈 것인가, 아니면 AI 시대 전환 교육 계좌로 갈 것인가 — 이것은 열린 질문이다. 백가쟁명식 사회적 합의를 통해 정교화해야 할 설계의 영역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다. 프로그램의 형태를 둘러싼 논쟁은 앞의 논지를 수긍한 다음에야 의미가 있다. 논지를 건너뛴 채 개별 프로그램만을 두고 논쟁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않다. 초과세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국민배당금은 허황된 이야기다. 그러나 논지가 맞다면, 아무 원칙 없이 그 초과이익의 과실을 흘려보내는 것이야말로 더 무책임한 선택일 수 있다.

• 마지막으로
최근 대통령을 면담한 데미스 하사비스는 AI 시대에는 기업이든 국가든 ‘새로운 경제모델’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조언을 남겼다.
어쩌면 한국은 그 변화가 가장 먼저 압축적으로 도착한 나라일지도 모른다. AI 인프라 생산 역량, 초고속 디지털 사회, 저출생·고령화, 수도권 집중, 제조업 기반, 문화 산업 — 앞으로 많은 나라들이 겪게 될 문제들이 한국에는 이미 동시에 들어와 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에서 시작되는 고민은 단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AI 시대의 초과이윤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분배할 것인가. 기술혁명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공동체를 어떻게 재설계할 것인가. 창업·문화·이민·복지를 어떤 새로운 균형으로 묶어낼 것인가. 우리가 먼저 고민하고 토론하며 만들어내는 모델이, 나중에는 AI 시대 국가들의 하나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있다.
지금 한국 앞에는 드문 역사적 가능성이 놓여 있다. AI 인프라를 공급하는 나라를 넘어, AI 시대의 초과이윤을 인간의 삶으로 환원하는 첫 번째 국가가 될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자동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지금부터의 선택이 한국을 다시 평범한 순환형 수출경제로 되돌릴 수도 있고,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산업국가로 밀어올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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