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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한 일정은 후지산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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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5.15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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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후지산을 바라보며 아침먹기, 후지산을 바라보며 커피마시기, 후지산을 바라보며 걷기 등등… 산맥도 아니고 정말 거대하기 그지없는 하나의 산봉우리가 압도적으로 솟아있으니 왜 일본인들이 후지산에 환장하는지 백분 이해가 가더군요.

그런데 이 후지산이라는 녀석이 참 신기합니다.

청명한 하늘의 후지산을 보려면 덕을 쌓아야 한다고 할 정도로 영 그 맨얼굴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침에 날이 쨍하더라도 후지산은 구름 뒤에 얼굴을 숨기는가 하면, 다른 일을 하다가 보면 구름 뒤에 수줍게나마 모습을 보여주고는 합니다.

높은 지역은 기압이 높아 구름이 잘 모인다나 뭐라나 옛날 과학시간에 배운 것 같은데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제가 도착한 첫날에는 비가 참 대차게도 내렸습니다. 후지산 뷰로 유명한 후지요시다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비가 하도 많이 와 후지산 뷰는 커녕, 얼어죽는 줄 알았습니다.

기껏 쉬러 왔는데 오자마자 비가 쏟아진다고 슬플법도 한데, 이번에는 영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주제로 삼은 여행이니만큼, 바꿀 수 없는 것에는 연연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일까요.

그 다음날 아침 후지산은 경이로울만큼 청명한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그 날 오전과 오후 사이에는 다시 비가 왔습니다.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후에는 다시 모습을 허락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날씨처럼 내가 어떠한 행동을 한다고 해도 바꿀 수 없는 것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니 한결 편해졌습니다.

이번 여행 간에 길을 잘못 들어 도착 시간이 늘어나도, 주차하다 범퍼를 갈아먹어도, 음식이 맛이 없어도 괜찮았습니다. 일어난 일은 바꿀 수 없으니 마음 편하게 먹고, 바꿀 수 있는 일을 하면 되죠. 길을 돌아 가면 되고, 수리비 내면 되고, 더 맛있는 무언갈 또 먹으면 됩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20km 정도 되는 일차선 일방향 숲 속 도로를 창문을 열고 운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16도 정도 되는 추운듯 시원한 바람이 좋고, 앞 차가 천천히 가서 50km 속도로 가느라 오히려 주변을 즐길 수 있어 좋고, 중간에 전파가 끊겨 핸드폰에서 리셉션이 끊기는 것 까지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 길 중간에 ‘여기서 장사가 되나?’ 싶은 아이스크림 가게에 무작정 멈춰 아이스크림도 사먹어보고, 그 근처 소들이 풀을 뜯어먹는 초원에서 후지산이 보이는 배경이 있다길래 원래 목적지에서 옆길로도 세봤습니다.

결국 구름이 껴있어 초원 뒤로 후지산이 보이는 장관은 보지 못했지만, 괜찮았습니다. 이미 후지산은 넘치도록 허락해준걸요.

여행이라는 여유에서 온 마음이고 내일 한국을 돌아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조급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잠시나마라도 이러한 평안을 얻었다는 것에 만족합니다.

오늘 온 숙소는 카와네혼이라는 읍에 위치한 작은 료칸입니다. 주인장분이 너무나 친절하게 대해주시는데 아무래도 소통의 한계가 있어 서로 열심히 번역기를 써가며 소통했습니다.

식사가 끝나고 목욕물을 받아놨다며 목욕을 하고 오라고 합니다. 목욕이 끝나고 나면 별을 볼 수 있게끔 화로를 준비하겠다고. 그리고 번역기에는 다음과 같이 써있습니다.

‘이 곳은 밤하늘의 별이 예쁜데 오늘 구름이 많아 많이 보이지 않아 아쉽습니다’

저 또한 번역기를 통해 보여드립니다.

‘날씨는 제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걸요. 괜찮아요. 조금만 보여도 충분합니다.’

목욕을 하고 나오니 주인분이 베란다에 화로를 놓고 레몬차를 놓아주십니다.

분명 목욕을 하기 전에는 구름이 가득했는데, 어쩔 수 없는 것들이 고맙게도 허락해준 풍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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