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다임 전환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그것을 예측하고 최종 상태를 그려보는 게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그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것이다.
유튜브와 넷플릭스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는 아들이 최근 왜 블록버스터가 사라졌냐고 물었다. 그에게 영화를 빌리러 어딘가를 차를 몰고 가서, 다음 날 다시 차를 몰고 가서 반납한다는 개념은 거의 소설처럼 들렸다. 나는 진열대 사이를 거닐며 느끼는 즐거움, 예상 밖의 작품을 우연히 발견하는 세렌디피티, 금요일 밤의 의식 같은 걸 설명하려 했다. 아들은 잠시 멈추더니 이렇게 말했다. "뭔가 하나 보려고 할 일이 너무 많은 거 아니야?"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들은 패러다임 전환을 겪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흡수되고, 당연해지고, 잊혀진 뒤에 살고 있었다. 한때 인프라처럼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불편함으로 느껴졌다. 한때 마법처럼 느껴졌던 것이 이제는 비효율적으로 느껴졌다. 남은 것은 좋았던 옛날에 대한 향수뿐인데, 돌이켜보면 그렇게 좋지도 않았다. 패러다임 전환이란 그런 식으로 작동한다.
토머스 쿤은 '과학 혁명의 구조'에서 진보는 직선으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프레임워크 단위로 움직인다. 우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모델 안에서 작동하다가, 이상(anomaly)이 쌓인다. 결국 모델에 금이 간다. 한때 비주류였던 것이 자명해진다. 한때 자명했던 것이 구닥다리가 된다.
패러다임 전환은 시장, 기술, 인간의 사고 아래서 일어나는 지각변동이다. 조용히 시작된다. 처음에는 장난감처럼, 극단적 사례처럼, 틈새 학문처럼 보인다. 에디슨 이전의 전기, 넷스케이프 이전의 인터넷, 파운데이션 모델 이전의 AI처럼. 신호는 흩어져 있고, 믿는 사람은 소수다. 그러다 갑자기 인사이트, 용기, 타이밍, 경제성이 수렴하고, 세상이 휜다.
본질적으로 패러다임 전환은 멘탈 모델에 도전한다. 우리가 무엇을 아는지뿐 아니라 어떻게 아는지를 의문에 부치게 강제하고, 이건 깊이도 불편한 일이다. 인간은 일관성을 추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내부 지도를 만들고, 종종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방어한다.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은 인지적으로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낡은 패러다임은 단순히 기술이나 제품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아니다. 정체성이다.
이것이 똑똑한 사람들이 분명한 전환을 놓치는 이유다. 지능의 실패가 아니다. 우리가 복잡성을 관리하는 방식의 특성이다. 패러다임 전환은 합의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부조화에서 시작된다. 기존 방식이 새로운 데이터에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저항이 따른다. 기존 강자들이 방어한다. 얼리 어답터들이 실험한다. 충분한 사람들이 배우고, 잊고, 다시 배운 뒤에야 새로운 모델이 상식이 된다. 돌이켜보면 최종 상태는 필연적으로 보인다. 실시간으로는 그 과정이 지저분하고 논쟁적이다.
최고의 창업자들은 서로 충돌하는 두 가지 믿음을 동시에 품는다. 현재 시스템이 왜 작동하는지 이해할 만큼 존중한다. 동시에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며 더 나은 방법이 있다고 믿을 만큼 존중하지 않는다. 이 긴장은 불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편 중 하나로 무너지면서 해소한다. 현상 유지를 방어하거나, 완전히 무시하거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끄는 창업자들은 그 긴장 속에서 산다. 해소하지 않는다. 활용한다.
넷플릭스는 단순히 편의성을 제공한 게 아니었다. 접근 방식 자체를 재정의했다. 블록버스터는 재고와 매장 면적을 최적화했다. 넷플릭스는 지연 시간과 선택지를 최적화했다. 하나는 기존 모델을 개선했다. 다른 하나는 모델을 바꿨다. 새로운 프레임을 한 번 보고 나면, 기존 프레임은 마찰처럼 느껴진다.
지난 20년간 SaaS가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를 정의했다. 온프레미스에서 클라우드로, 라이선스에서 구독으로, 데스크탑 설치에서 브라우저 워크플로우로 이동했다. 해마다, 버티컬마다, 기능마다 체계적으로 펼쳐진 거대한 전환이었다. 이제 AI가 등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SaaS가 소프트웨어를 집어삼켰고 이제 AI가 SaaS를 집어삼킬 것이라고 선언한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만, 패러다임 전환은 그렇게 깔끔한 적이 거의 없다.
이 패턴은 전에도 봤다. 이커머스가 오프라인 매장을 소멸시킬 거라 했고, 모바일이 데스크탑을 죽일 거라 했고, 크립토가 은행을 대체할 거라 했다. 때로는 파도가 정점을 찍고 물러난다. 패러다임 전환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그것을 예측하고 최종 상태를 그려보는 게 아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채로 그 한가운데를 항해하는 것이다. 너무 일찍 움직이면 준비되지 않은 인프라에 자본을 태운다. 너무 늦게 움직이면 어제의 마진을 방어하게 된다. AI는 인터페이스에서는 빠르게, 아키텍처에서는 느리게 움직일 수 있다. 대체하기 전에 보강할 수 있다. 표면에서는 혁명적으로, 그 아래에서는 점진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아직 모른다. 그리고 그 불확실성이 아름답고, 그것이 핵심이다.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확실함 자체가 취약하다는 것이다. 땅은 움직이기 직전까지 항상 안정적으로 느껴지고, 그제야 불안정한 땅 위에 있었다는 걸 깨닫는다. 그 어느 때보다 깊이 박힌 가정에 의문을 제기할 겸손함과, 남들이 아직 무시하는 미래를 향해 만들어나갈 대담함이 필요하다. AI 네이티브 회사의 창업자든 기존 SaaS 회사든, 다가올 패러다임 전환을 항해하면서 단단히 준비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