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00만 달러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내 머리에 반복적으로 각인된 것처럼, 조종사가 걸어서 나올 수 있는 착륙은 좋은 착륙이다.
어제의 사건들을 처리하면서, 항상 그래왔듯이 정직함, 취약함, 책임감의 측면에서 몇 가지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
왜 그렇게 큰 청산을 당했는지부터 시작하고, 그다음 지난 18시간 동안의 몇 가지 관찰을 공유하겠다.
무엇보다 먼저, 목표에 너무 집착했다. 올해 어느 시점에 내 미실현 손익은 1억 달러 목표 금액 중 9,800만 달러에 달했다. 다른 플랫폼의 수익까지 세면 실제로 그 목표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 플랫폼들 중 일부가 하이퍼리퀴드만큼의 투명성이 부족했기 때문에, "증명된 숫자가 아니면 일어나지 않은 것"이라는 정신적 게임이 되었다.
9월 말로 향하면서, 내 논리는 모두가 하락을 예상하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옳을 경우를 대비해 포지션을 잡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틀렸다.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했다. 올해 모든 "블랙스완"에서 살아남았고 각각 사건을 손실마저 커버하는 수익으로 전환한 경험이 있었다.
그 1억 달러 마일스톤은 나에게 숫자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수년 전, 같은 금액으로 매각하는 것을 목표로 실제 회사를 만들었다. 하지만 떠났다. 수익보다 평화를 선택했다.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내 자신의 창조물에 갇힌 죄수같았다. 그래서 이전에 내가 세운 금액적 목표를 다른 방식으로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일종의 구원으로 다가왔다. 더 나은 방법을 찾았다는 개인적 검증 같은 것이었달까.
나는 항상 고집스러울만치 회복력이 있었다. 넘어졌지만, 아웃된 적은 없다.
인생의 초기 챕터들에서 살아남도록 도운 바로 그 결단력이 다음 챕터를 시작하는 데 조급하게 만들었다. 일일 트레이딩을 넘어서 이 공간의 미래를 형성해 나가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다. 다음으로 올 프로젝트를 빌딩하는 것을 돕고, 단지 그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원했다.
크립토는 거칠고, 아름답고, 깨진 조각들이 동일한 비율로 존재한다. 내 배경은 항상 소비자 우선이었다. 사람들에게 옳게 행하면, 보상은 결국 따라온다. 그 원칙은 이 시장에도 속한다. 그리고 나는 그 정신을 이 시장에 가져올 생각이다.
하지만 서둘렀다. 흥분이 규율을 압도하게 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책임이다.
타임라인이 "크라임 시즌" 이라고 울부짖는 게시물로 가득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 게시물에도 그런 댓글이 달렸다), 나는 항상 실패를 인정하지 않으면 승리를 주장할 수 없다 라는 말을 믿어왔다.
어제, 누군가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물었을 때, 아내 품에서 울었다고 인정했다. 일부는 "카지노에서 우는 거 아니야"라며 나를 조롱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울던 그 순간을 의도적으로 공유했다. 때때로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라는 이유였다.
취약함이라는 감정은, 특히 남성들 사이에서,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말해두자면, 올해 수익률로는 여전히 플러스에 있다. 나는 회복하고, 재건하고, 다시 일어설 것이다.
붕괴로부터 남은 몇 가지 빠른 관찰점이 있다.
L2가 다시 한번 실패했다
온체인 활동이 가장 바쁘게 일어나는 도중에 아비트럼과 베이스가 나를 실망시켰다. 스테이블을 옮기려고 할 때 트렌젝션이 멈췄다. 한편 솔라나는 바위처럼 견고하게 유지됐다. 솔라나로 움직였다 하더라도 포지션을 구할 수는 없었을 거다 (이더리움 $3200 / 솔라나 $138 의 그 캔들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솔라나는 가장 중요할 때 성능을 발휘한다는 것을 증명했고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충성심을 얻고 있다.
레버리지는 악당이 아니다
일부는 서둘러 "봐, 이러니까 레버리지가 사람 죽이는 거라니깐"이라고 말했다. 거부한다. 레버리지는 그저 도구에 불과하다. 칼, 차, 돈 자체 같이 도구일 뿐이다. 도구는 악하지 않다. 그것을 휘두르는 손이 결과를 결정한다.
여파 속의 인간성
다른 사람들의 손실을 축하하는 악마들 속에서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 공간의 어두운 면이다) 나는 또한 놀라운 연민을 목격했다. 위안, 연대를 제공하는 사람들... 심지어 다섯 명의 개인이 내가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돈을 보내겠다고 제안했다. 물론 거절했다. 하지만 그 제스처가 나를 얻어맞는 듯한 감정을 들게 했다. 모든 악함 속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함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줬다.
대부분의 경우 나는 지원을 제공하는 사람이지, 받는 사람이 아니다. 어제는 그 역학을 뒤집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의미가 있었다.
물론 어제는 내 가장 자랑스러운 순간이 아니었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챕터는, 고통스러운 순간들조차, 목적이 있다. 이 경험이 단 한 사람에게라도 겸손함을 유지하고, 리스크를 관리하고, 혼돈 속에서도 인간으로 남으라고 상기시킨다면, 낭비되지 않았다.
손실은 수익이 절대 가르칠 수 없는 것을 가르친다. 진정한 힘이 어디에 살아 숨쉬는지를 말이다. 그리고 내 힘은 절대 숫자에 있지 않았다. 재건하려는 의지에 있다.
깊은 곳에서 — The White Whal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