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사이, 토큰화를 향한 움직임은 눈에 띄게 가속화됐다.
이제 더 이상 가설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현실이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사이퍼펑크들의 실험 공간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는 전통 금융 대기업들까지 도달했다. 프랭클린 템플턴, DTCC, Figure, JP모건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기관들이 그 예다.
다만 분명히 작동하고 있고, 금융의 미래에서 정당한 자리를 차지할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를 이해하거나 관심을 갖는 사람은 극히 소수다.
나는 케임브리지와 런던에서 약 10년간 모기지 브로커로 일하며 다양한 규모와 성격의 고객을 상대해왔다. 내 업무의 핵심은 언제나 모든 단계와 전문 용어를 ‘평균적인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찰이나 긴장감이 생기기 마련이고, 마치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무리 좋아도, 불필요한 복잡함으로 신뢰를 잃는 순간, 전환은 매우 어려워진다.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위험이나 불확실성을 스스로 추가하는 셈이다.
이 점은 크립토 업계도 똑같다. 이미 존재하던 개념에 더 정교한 용어를 덧씌워 마치 의미 있고, 획기적이며, 완전히 새로운 것처럼 포장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하지만 겉을 벗겨내고 나면, 사실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개념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혼란만 커진다.
나는 이런 접근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낸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유입을 만드는 자석이 아니라, 기피제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기관이 아니다. 기관은 이해할 사람을 고용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건 평범한 사람들이다. 이웃, 부모님처럼 실제로는 이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도, 복잡하고 위험해 보이고, 마치 학위가 있어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예 손대지 않는 사람들 말이다.
대중적 채택이라는 것은 언제나 ‘모두가 작동 원리를 이해했기 때문에’ 일어난 적이 없다. 아무도 TCP/IP가 뭔지 몰라도 인터넷은 쓴다. 송금할 때 SWIFT 코드를 고민하는 사람도 없다. 기술은 사라졌고, 그건 모두가 기술을 배워서가 아니라, 소수의 큰 플레이어들이 그것을 깊숙이 내장시켜서 사용자들이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백엔드는 백엔드에 남겨둔 것이다.
크립토에 몸담은 5년과 전통 금융에서의 10년을 돌아보면, 소통 방식의 격차는 정말 크다. 전통 금융에도 물론 전문 용어는 많지만, 실제로 고객에게 무언가를 판매할 때는 반드시 번역한다. 반면 크립토는 전문 용어를 그대로 던져주고, 사람들이 알아서 이해하길 기대한다. 혹은 괜히 어렵게 보이면 더 대단해 보인다고 착각한다.
힌트 하나를 주자면, 그렇지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아주 단순한 예만 봐도, 영국 금융과 미국 금융은 같은 개념임에도 용어는 완전히 다르다. 할부 구매와 분할 납부, 당좌 계좌와 체킹 계좌처럼 말이다. 이제 이 간극이 백 배쯤 벌어진다고 상상해보라. ‘토큰화’라는 말이 그냥 ‘디지털 소유권’이라고 말하는 것과 비교했을 때 느껴지는 거리감이 바로 그것이다.
물론 전문 용어에도 역할은 있다. 업계 내부에서 창업자, 엔지니어, 변호사, 규제 당국, 투자자 간의 정밀한 소통에는 필요하다. 하지만 그 언어를 그대로 최종 사용자에게 노출하는 순간, 잠재 시장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잘라내는 셈이다.
나는 무조건 단순화하거나 멍청하게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기술적 언어는 내부에 두고, 사용자에게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해주는지’를 설명하자는 것이다. 집을 사는 사람이 건설 과정이나 등기 시스템을 이해해야 했던 적은 없다.
크립토가 또 하나 잘못 짚는 부분은 ‘피치’다. 모든 설명이 탈중앙화, 투명성, 중개 제거에 집중되어 있는데, 일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통제 부재, 사생활 노출, 문제 발생 시 연락할 곳이 없다는 의미로 들린다.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은 편의성, 안전함, 문제가 생겼을 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다. 이 모든 것은 기술 안에 이미 존재한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관심 없는 철학적 언어 아래 묻혀 있을 뿐이다.
업계 내부에서도 이런 변화는 이미 보인다.
“퍼미션리스 블록체인에서 주식을 토큰화한다” 대신
“권리와 가치를 투명한 레일 위로 옮긴다”라고 말하는 식이다.
같은 이야기지만 훨씬 이해하기 쉽다.
프랭클린 템플턴도 자기 상품을 ‘토큰화된 국채’나 ‘블록체인 기반 증권’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들은 “온체인 미국 국채 머니마켓 펀드”라고 불렀다.
새로운 용어는 하나 정도만 허용하고, 나머지는 사람들이 이미 신뢰하는 언어를 사용한 것이다.
NFT도 마찬가지다. 왜 굳이 백엔드 용어인 ‘대체 불가능 토큰’이라고 불렀는지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된다. 본질은 그냥 디지털 수집품이다.
이런 변화에 대한 저항은 항상 같은 곳에서 나온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만드는 게 사실 별로 특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다. 전문 용어는 신비로움을 지켜주고, 평가조차 똑똑해야 할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하지만 기관은 신비에 관심 없다. 비용, 통제, 리스크에 관심 있다.
일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다.
기술은 이미 작동하고 있고, 제품도 실재한다. 문제는 프레젠테이션이다. 언어의 격차는 중요하다. 특히 제품이 사용자와 맞닿는 가장자리에서 말이다.
소비자용 제품을 만든다면, 언어를 완전히 번역하라. 이해 가능하게 만들어라. 하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대형 플레이어들이 이 기술을 너무 깊숙이 내장해서 소비자가 아예 접촉조차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은행이 토큰화 레이어를 처리하고, 사용자는 더 빠른 대출, 즉시 결제, 더 나은 금리를 누리면 된다.
사람들이 그 단어 자체를 더 이상 알 필요가 없어질 때, 그 기술은 제 역할을 다 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