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유독 90년대에 대한 향수가 그윽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90년대에 나온 앨범을 더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음. 요즘에는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를 더 듣는 중이다.
어제 나왔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앨범이다.
이런게 말 그대로 타임리스라는 건가.
최근에는 유튜브에 이 앨범을 '처음 듣는 사람의 리액션' 영상들이 종종 보였다.
아니 어떻게 오케컴을 처음 듣지?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가는 찰나에, 이 영상 속의 사람 나이가 대충 10대 후반~20대 초반이라고 생각하니 그럴만하다고 생각도 들었다.
얘네한테는 이게 거의 30년전 음악이다.
나한테 '30년전 음악'은 비틀즈, 레드 제플린, AC/DC, 핑크 플로이드 같은 밴드들이었다.
내가 이 밴드들의 음악을 처음 듣는 것도 뭔가 도전하는 것만 같고, 미지의 세계로 이끌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오래된 도서관에서 먼지에 뒤덮힌 오래된 책의 먼지를 후후 불어내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는 그런 느낌.
아마 오케이 컴퓨터를 처음 들어보는 이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라온 세계는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도서관인 거다.
그리고 내가 자라온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자라온 세계는 팍스 아메리카나로 대변되는, 서구문명이 가장 빛나던 시기였다.
소련붕괴와 역사의 종말. 무한한 낙관주의. 멜팅팟과 포용.
이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는 이 세계관을 뒷받침하는 원죄에 대해서 더이상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을 위시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진영에서는 2차세계대전 이후로 항상 한 방향으로 역사가 흘러갔다. 더 포용적으로, 더 진보적으로.
이 세계의 원죄를 씻기 위해서 이렇게 발전한 것이다.
적어도 내가 자라온 세계에서는 나치, 파시즘, 인종차별, 전체주의는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절대악이었다.
그런데 이 절대악이 사실은 옳았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미국-이란 전쟁 이후로 반유대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다.
유대인들은 내가 자라온 세계 서사의 가장 중심에 있는 집단이다.
그동안 우리는 쉰들러 리스트, 피아니스트,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과 같은 영화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동정심을 학습당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들이 금융과 미디어를 장악하고, 비밀 결사와 엘리트 모임을 통해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을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 만천하에 알려지며 동정은 커녕,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원죄의 서사가 완전히 깨진 것이다.
내가 알던 선악의 질서가 뒤집히는 세계가 다가오고 있다.
동시에 내가 알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질서도 와해되고 있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을 통해서 세계가 배운 것이 하나 있다면, 미국의 충격과 공포 전술은 더이상 먹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란의 최고지도자를 가루로 만들고 각종 군사기지와 인프라를 박살냈다. 이 과정에서 보유한 미사일 전력의 거의 절반 정도를 소모했다.
호르무즈 해협 탈환을 위해 항모도 3척 끌고 왔지만 금방 후퇴했다.
그리고 이제는 이스라엘의 눈치를 보며, 이란에게만 좋은 양해각서에 서명하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미국은 크루즈 미사일, 이란은 드론으로 싸웠기 때문이다.
미국은 참수작전과 무력투사, 이란은 모자이크 전술과 반접근/지역거부로 싸웠기 때문이다.
팍스 아메리카나의 무기와 전략,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비대칭 전략의 싸움에서 미국이 사실상 패배를 선언한 것이다.
무적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이 개망신을 당했다.
내가 알던 세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 세계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세계는 어디로 흐르는 걸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