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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회사는 더 이상 ‘직무’를 채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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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6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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툴의 시대에서 결과의 시대로, 전문가의 시대에서 오너의 시대로

한동안 우리는 AI를 “개인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도구”로 이해해왔다. 개발자는 코드를 더 빨리 쓰고, 디자이너는 시안을 더 빨리 만들고, 마케터는 카피를 더 빨리 뽑는다. 이 관점은 틀리진 않다. 다만 이제는 너무 약하다.

지금 벌어지는 변화의 본질은, 사람이 조금 더 빨라지는 데 있지 않다.
회사가 일을 나누는 방식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는 데 있다.

예전의 조직 구조는 포드의 조립라인처럼 설계됐다. 한 사람은 기획하고, 다른 사람은 디자인하고, 또 다른 사람은 구현하고, 마지막 사람이 테스트한다. 이 구조는 한때 매우 합리적이었다. 역할 사이를 넘는 비용이 실제로 컸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바로 제품을 만들 수 없었고, 엔지니어가 바로 마케팅을 집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직은 전문성을 기준으로 분업됐고, 회사는 수많은 handoff 위에 세워졌다.

소프트웨어 회사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PM이 spec을 쓰고, 디자이너가 화면을 만들고, 엔지니어가 구현하고, QA가 검수하고, 마케팅이 런칭했다. Agile은 waterfall을 sprint로 바꿨지만, handoff 자체를 없애진 못했다. 속도는 조금 빨라졌지만, 구조는 그대로였다.

그런데 AI가 이 전제를 흔들고 있다.

역할 사이의 기술적 간극이 몇 달 사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제 고객과 대화한 사람이 직접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필요한 랜딩 페이지를 만들고, AI를 이용해 코드를 짜고, 배포까지 밀어붙이는 일이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Anthropic은 2026년 에이전트형 코딩 트렌드 보고서에서 비개발 직군이 엔지니어링 도움 없이 툴을 만들고, 문제를 가장 잘 이해하는 도메인 전문가가 직접 해결을 시작하는 흐름을 짚었다.

문제는 기술은 바뀌었는데, 조직도는 그대로라는 점이다.

많은 기업이 AI 도입에 성공했다고 말한다. 팀마다 copilot을 붙였고, 대시보드로 활용률도 추적한다. 하지만 조직 구조가 그대로라면 바뀌는 것은 각자의 국소 생산성뿐이다. PM과 디자인 사이의 의존성도 그대로, 디자인과 엔지니어링 사이의 리뷰 루프도 그대로, “모두가 컨텍스트를 갖기 위해” 여덟 명이 들어가는 회의도 그대로다. 바뀐 것은 도구이지, 운영 체계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의 핵심 질문은 “누가 AI를 잘 쓰는가?”가 아니라,
“누가 AI를 전제로 조직과 업무를 다시 설계하는가?”가 된다.

Copilot은 툴을 팔고, autopilot은 일을 판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은 “intelligence work”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자동화의 임계점을 가장 먼저 넘었다고 본다. 실제로 Sequoia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이 직군 전반의 AI 툴 사용에서 절반을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고 설명했고, Anthropic 역시 공개 API 툴 호출의 거의 50%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 집중돼 있다고 밝혔다. 다른 영역은 아직 몇 퍼센트 수준에 머문다.

이 데이터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개발자가 AI를 많이 쓴다”가 아니다.
지능 중심의 업무가 먼저 자동화되고 있고, 그다음 기회는 아직 덜 건드려진 다른 산업에 있다는 뜻이다.

이 맥락에서 “대부분의 일은 intelligence와 judgement로 나뉜다”는 구분이 중요해진다. intelligence는 복잡해도 결국 규칙 기반으로 풀 수 있는 영역이다. 스펙을 코드로 옮기고, 테스트하고, 디버깅하고, 문서를 작성하고, 양식을 채우는 일들이 여기에 가깝다. 반면 judgement는 경험, 맥락, 취향, 책임을 요구한다. 무엇을 먼저 만들지, 언제 출시할지, 어떤 리스크를 감수할지 같은 결정이 여기 속한다. Sequoia의 주장은 AI가 intelligence를 빠르게 흡수하고, judgement는 그 뒤를 따라온다는 것이다.

여기서 아주 큰 사업적 함의가 나온다.

만약 AI가 intelligence 영역을 먼저 대체한다면, 초기 승자는 “전문가를 더 생산적으로 만드는 도구”보다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직접 납품하는 서비스일 가능성이 높다. 회계팀용 AI 툴보다 “우리가 결산을 마무리 해드립니다”가 더 강력할 수 있고, 법무팀용 문서 도구보다 “우리가 NDA를 작성해드립니다”가 더 강할 수 있다. Sequoia는 이를 설명하며, 기업이 소프트웨어보다 실제 서비스와 노동에 훨씬 더 큰 예산을 쓴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copilot은 소프트웨어 예산을 차지하지만, autopilot은 서비스 예산 전체를 먹을 수 있다.

즉 AI의 다음 큰 파도는 더 좋은 SaaS 기능 몇 개가 아니라, 서비스업을 소프트웨어처럼 재편하는 것일 수 있다.

이때 가장 좋은 wedge는 어디일까. 정답은 대개 이미 외주화된 업무다. 고객이 이미 외부 업체에 맡겨도 된다고 받아들이고 있고, 대체 가능한 예산 라인이 존재하며, 애초에 툴이 아니라 deliverable을 사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을 대체하겠다”보다 “원래 외주 주던 일을 더 빠르고 싸고 안정적으로 해주겠다”가 훨씬 마찰이 적다. 이건 지금 AI-native 서비스가 들어가기 좋은 진입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변화를 이해하려면 제품 전략만이 아니라, 인재상과 조직 구조도 함께 봐야 한다.

이제 많은 빠른 스타트업은 “PM만”, “마케터만”, “기획만” 뽑지 않는다. 그들은 tinkerer를 원한다. 아침에 고객과 얘기하고, 점심 전에 해결책을 만들고, 저녁 전에 배포할 수 있는 사람. 중요한 것은 직무의 이름이 아니라 문제를 시작부터 끝까지 쥘 수 있는가다.

이 변화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사람의 역할이 직접 일을 수행하는 것에서, 에이전트를 만들고 위임하고 관리하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Microsoft는 이미 관리자들의 28%가 사람과 에이전트가 섞인 팀을 이끌 “AI workforce managers” 채용을 고려하고 있고, 32%는 에이전트를 설계·개발·최적화하는 specialists를 채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향후 5년 안에 기업들이 business process redesign, multi-agent system 구축, agent training, agent management에 더 많이 관여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 지점에서 커리어의 축도 바뀐다.

과거에는 “나는 백엔드 개발자”, “나는 PM”, “나는 마케터” 같은 정체성이 커리어의 중심이었다.
앞으로는 더 본질적인 질문이 남는다.

이 사람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가, 아니면 handoff를 기다리는가?

generalist vs specialist라는 오래된 논쟁도 사실 정확한 질문이 아니었다. 더 중요한 것은 ownership vs dependency다. 직무 경계 안에서만 움직이는 사람인지, 아니면 문제가 보이면 AI와 도구를 총동원해 직접 해결하는 사람인지가 훨씬 중요해졌다.

그래서 이제 높은 가치를 갖는 사람은 단순히 코드를 예쁘게 짜는 사람이 아니다.
컨텍스트를 오래 붙들고, 필요한 툴과 모델과 에이전트를 연결해, 실제 결과를 만드는 사람이다. Anthropic이 공개한 소프트웨어 개발 분석에서도 Claude Code는 일반 챗 인터페이스보다 훨씬 높은 자동화 성향을 보였다. Claude Code 대화의 79%가 자동화와 관련됐고, 최소 상호작용으로 작업을 위임하는 “directive” 패턴이나, 환경 피드백을 받아 자율 수행하는 “feedback loop” 패턴이 일반 대화형 사용보다 훨씬 높았다.

이건 AI 시대의 노동을 더 높은 추상화 단계로 올려보면 더 선명해진다.

전통적인 업무는 사람이 직접 수행한다.
그다음 단계는 AI를 활용해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AI에게 업무를 가르쳐 대신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그렇게 일하는 AI를 관리하는 것이다.
그다음은 업무를 운영하는 AI 시스템 자체를 설계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AI 팀만이 할 수 있는 새로운 종류의 일을 만드는 것이다.

이걸 0차부터 5차까지의 이동이라고 볼 수 있다.

0차는 노동 제공자다.
1차는 AI를 잘 쓰는 개인이다.
2차는 AI에게 일을 위임하는 사람이다.
3차는 에이전트 팀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4차는 에이전트 시스템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5차는 그 시스템으로만 가능한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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