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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모함 앞의 돛단배, AI 스타트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게시
2025.11.11 23:15
조회
186
포워드
4

"우리가 열심히 만든 AI 에이전트, 결국 파운데이션 모델이 업데이트 한번 하면 사라질 비즈니스 아닐까?"

요즘 AI 스타트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나면 늘 이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꽤나 설득력 있는 비관론이죠.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거인들은 최고의 데이터, 인재, 컴퓨팅 파워를 손에 쥐고 각 분야 전문가들을 모아 'AI 에이전트 체육관'이라도 차린 듯 무섭게 기술을 발전시키고 있으니까요. 우리가 이뤄낸 작은 진보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공포는 꽤 현실적입니다.

이 비관론이 왜 이렇게 뼈아프게 다가올까요? 제 생각엔 세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가 서 있는 땅이 계속해서 꺼지고 있습니다. AI 기초 기술은 9~12개월마다 '바다의 변화(Sea Change)'라 불릴 만큼 모든 것을 뒤엎는 격변을 겪고 있습니다. 안정된 땅 위에서 집을 지어야 할 스타트업 입장에선 발밑이 계속 무너지는 것과 같죠. 어제까지 돈 주고 팔던 혁신적인 기능이, 오늘 아침 눈 떠보니 무료 기본 기능이 되어버리는 세상입니다. 우리 회사의 존재 이유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질 수도 있다는 뜻이죠.

둘째,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플레이어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날렵한 다윗(스타트업)이 둔한 골리앗(기존 강자)을 위협하는 구도였다면, 지금은 골리앗들이 스스로 핵폭탄을 만들고 터뜨리고 있습니다. 빅테크와 프론티어 랩들은 기술 진화의 속도 자체를 지배합니다. 우리는 이들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이들이 일으키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돛단배 신세일지 모릅니다.

셋째, 기술과 비즈니스의 시간이 다르게 흐릅니다. 기술은 1년 만에 세상을 바꾸지만, 고객과의 신뢰, 시장에 각인되는 브랜드, 손발이 척척 맞는 팀을 만드는 데는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스타트업이 제대로 된 '비즈니스'의 문턱을 넘기도 전에, 기술의 파도에 휩쓸려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이런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면, 스타트업의 출구는 반짝 성공 후 퇴장하거나 거대 기업에 인수되는 것뿐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됩니다. 세대를 대표하는 독립적인 거대 기업의 탄생은 정말 꿈같은 이야기가 되어버린 걸까요?

https://x.com/yishan/status/1987787127204249824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회는 깊은 곳에 있다

하지만 이 거대한 항공모함의 그림자 속에서도, 돛단배가 항해할 수 있는 바다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기회는 거인들이 쉽게 허리를 굽혀 들여다보지 않는, 깊고 복잡한 고객의 현실 속에 있습니다.

1. 고객은 'AI 모델'이 아니라, '해결된 내 일'을 산다.

고객들은 GPT-5의 성능에 감탄할지는 몰라도, 결국 돈을 내는 이유는 자신의 복잡하고 골치 아픈 일을 해결해주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진짜 '일'은 단일 기능이 아닌, 여러 단계로 얽힌 워크플로우(workflow) 안에서 이뤄지죠. 우리 같은 스타트업의 진정한 해자(moat)는 바로 이 고객의 워크플로우에 집요하게 파고들어 AI를 녹여내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건 해당 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고객과의 끈끈한 신뢰 없이는 불가능하고, 범용 모델을 만드는 거대 기업이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영역입니다.

코드 생성 시장이 좋은 예입니다. Claude와 Codex라는 막강한 모델이 버티고 있음에도, 이 시장은 70억 달러 규모로 폭발했습니다. 그 안에서 커서(Cursor) 같은 스타트업은 개발자의 실제 작업 흐름에 최적화된 경험을 제공하며, 자신만의 단단한 팬층을 만들고 있습니다.

https://youtu.be/xs7bhb3NEFc

2. 시장의 문법이 바뀐다: '생산성 향상'을 넘어 '비용 구조의 파괴'로

과거 SaaS의 가치가 '기존 인력의 생산성을 10% 높여주는 것'에 있었다면, AI 에이전트는 '인건비 예산 자체를 대체'하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가치를 제안합니다. 이는 시장의 크기 자체를 재정의합니다. 수십 개의 제품으로 1,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SaaS와 달리, AI 스타트업은 단 하나의 핵심 제품만으로도 그 이상의 파괴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새로운 평가의 잣대: 마진율이라는 낡은 안경을 벗어던져라

"AI 스타트업은 추론 비용 때문에 마진이 낮다", "결국 파운데이션 모델의 보부상 아니냐"는 비판을 자주 듣습니다. 맞는 말일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마진'율' 자체가 아니라 고객 한 명에게서 얻는 절대적인 이익의 크기와 장기적인 마진 개선 가능성입니다. 오히려 낮은 초기 마진은 고객들이 우리 제품을 열정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건강한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런 '땅따먹기(Land Grab)' 국면에서는, 단기적인 단위 경제성을 희생하더라도 먼저 시장을 선점해서 고객이 반복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제품을 만들고,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우리만의 모델을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한 전략일 수 있습니다.

https://www.mostlymetrics.com/p/can-bad-gross-margins-ever-be-a-good-sign

또 다른 생존 전략: 기술을 팔지 말고, 판 자체를 소유하라

더 나아가, 거인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우리만의 왕국을 건설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전략이 있습니다. 바로 '풀스택(Full-stack)' 전략입니다.

이는 단순히 다른 회사에 팔기 위한 기술(AI 소프트웨어)을 만드는 것을 넘어, 그 기술을 핵심 엔진으로 삼아 해당 산업의 가치 사슬 전체를 직접 소유하고 운영하는 방식입니다.

  • 은행에 AI 소프트웨어를 팔기 위해 ChatGPT와 경쟁하는 대신, AI 기반 투자은행을 직접 설립하는 겁니다.
  • 보험사에 AI 솔루션을 판매하는 대신, AI 기술로 무장한 보험 중개사를 직접 차리는 거죠.

파운데이션 모델이 아무리 발전해도, 그들이 직접 '보험 중개' 비즈니스를 하지는 않을 겁니다. 풀스택 AI 기업은 기술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AI라는 압도적인 무기를 가진 '기술 기반 서비스 회사'가 되는 겁니다. 고객에게 더 저렴하고, 더 빠르며, 더 개인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며 기존 시장을 파괴적으로 혁신할 수 있습니다. 가치를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외부 기술 변화에 대한 방어력도 극도로 높아집니다.

https://x.com/leveredvlad/status/1987985132343455766

본질에 집중하고, 파도 위에서 춤을 추라

AI 스타트업의 생존과 번영은 '얼마나 기발한 기능을 만드는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거인들이 쉽게 복제할 수 없는 영역, 즉 (1) 고객의 핵심 워크플로우를 점유하거나, 더 대담하게 (2) 산업의 가치 사슬 전체를 소유하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물론, 단기적인 성장 모멘텀의 유혹은 강렬합니다. 하지만 AI가 '서부 개척시대' 같다고 해서 비즈니스의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방어 가능한 해자, 끈끈한 매출, 그리고 깊은 고객 사랑을 쌓으며 장기적인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기술 혁신의 속도와 그것이 사회에 스며드는 속도 사이에는 언제나 간극이 존재합니다. AI 시장은 포화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아직 1995년의 인터넷처럼 거대한 슈퍼 사이클의 초입에 서 있을 뿐입니다.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술의 파도는 계속해서 우리를 덮쳐올 겁니다. 그 파도에 휩쓸릴 것인가, 아니면 그 위에서 춤을 출 것인가. 그 선택은 기술 자체가 아닌, 우리가 고객의 문제와 그들의 일하는 방식에 얼마나 깊이, 그리고 얼마나 대담하게 파고드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https://www.digitalnative.tech/p/its-still-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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