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줄곧 금리 상승의 근본 원인을 수급부담으로 설명해왔음. 그런데 정작 정부는 국채 발행을 줄일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임. 쓸 곳은 많고, 찍으면 누군가는 사 준다는 믿음이 여전한 탓. 투자자들도 바보는 아니라서, 이런 정부를 보며 국채라는 안전자산의 지위에 슬슬 의구심을 품기 시작함. 2027년은 물론이고 2020년대 후반 채권시장의 핵심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가 재정립될 수 있느냐"일 것. 수급부담을 풀어줄 주체가 있다면 중앙은행 하나뿐.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건전화라는 숙제를 하느니 중앙은행에 답안지를 베껴 달라고 조르는 편이 빠르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음
- 주요 선진국 국채시장의 수급을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 위해 수요와 공급 지수를 자체 적으로 산출해 보았음. 수요지수는 입찰 응찰률(물량)과 입찰을 앞둔 금리 컨세션(얼마나 높은 금리를 제시해야 물량이 소화되는지)으로, 공급지수는 10년 만기 국채로 환산한 이표채 발행량(총공급)과 중앙은행 순매입을 뺀 민간 순매입으로 만들어봤음. 단위는 국가별 2010~2019년 평균을 0으로 둔 표준편차(σ). 수요에서 민간 순매입을 뺀 수급 갭이 마이너스면 공급 우위를 뜻함
- 최근 12개월(2025년 10월~2026년 9월) 주요 선진국(G7) 국채의 민간 수요는 1.2σ로 2010년대보다 분명히 강함. 그러나 민간 부문에서 받아줘야 하는 물량(정부가 새로 늘린 국채 가운데 중앙은행이 가져가지 않고 시장이 받아줘야 하는 몫)은 1.8σ로 더 크게 증가. 수급 갭은 2021년 2월 2.0σ로 정점을 찍은 뒤 2022년 하반기 마이너스로 돌아섰고, 2025년 들어 -0.7σ까지 하락. 중앙은행 매입이 만들었던 수요 우위 국면은 끝났다는게 보임
- 공급 측면에서 보아도 부담은 국채 발행보다 중앙은행 매입 중단 영향 탓이 큼. 최근 12개월 G7 국채 총공급지수는 0.6σ, 중앙은행 매입분을 제외한 민간 순매입지수는 1.7σ. 국채시장에서 중앙은행 비중은 2021년 27.3%에서 2025년 17.4%로 10%p 가까이 낮아졌고, 그 자리는 연기금·보험·펀드·가계 같은 자국 비은행이 채웠음(31.8% → 41.3%). 2025년 국채(GDP 대비 6.8%) 발행 증가분 가운데 4.4%p를 이들이 흡수
- 수요도 세부적으로 따져볼 필요. 응찰률을 반영한 물량지수는 G7 평균 0.6σ인 반면 입찰 컨세션을 반영한 가격지수는 0.1σ로 평소 수준. 투자자가 입찰에 많이 몰리는 것은 높아진 금리 수준 덕분이지, 이자를 덜 받고도 사 줄 만큼 수요가 강해진 것은 아님. 이는 금리가 내려가는 순간 수요도 함께 약해질 공산이 큼을 의미
- 그러나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에 들어서며 "향후 통화정책의 핵심 도구는 단기금라"라고 선언한 일본은행, 대출창구를 손보며 '사주지 않을테니 와서 빌려가라'는 ECB, 자국금리 급등에도 QT는 물론 자국 국채 직매각조차 멈추지 않는 영란은행, 전, 현직 의장 모두 QE를 후회하는 연준까지 중앙은행들은 더 이상의 무분별한 시장개입은 없다는 데에 한치의 이견도 없음. 이들의 논리는 "우리는 심판 또는 감독이지 시장이라는 경기장에서 뛰는 플레이어가 아니다"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