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해외에서 성장한 가상자산 기업과 거래를 자국 규제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과거 규제 불확실성 탓에 싱가포르와 두바이 등으로 빠져나갔던 가상자산 사업을 미국으로 되돌리는 이른바 '온쇼어(onshore)' 전략이다. 최근 국내에서 두나무를 비롯한 국내 기업의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이 부각된 것도 이 같은 정책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가상자산업계에 따르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올 들어 가상자산 기업의 미국 진입 문턱을 낮추는 제도 정비를 잇달아 추진하고 있다. 마이클 셀리그 CFTC 위원장은 지난 19일 백악관 행사에서 "금융의 새로운 최전선이 미국 땅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같은 날 탈중앙화 파생상품 플랫폼 하이퍼리퀴드를 직접 거론한 것도 이런 흐름을 보여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셀리그 위원장이 하이퍼리퀴드를 규정을 준수하는 방식으로 미국 시장에 들여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미국 이용자의 공식 거래를 제한해온 역외 플랫폼까지 규제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CFTC는 이미 길을 닦고 있다. 지난 5월 미국 규제 거래소가 비트코인 가격을 기초로 한 무기한선물을 상장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관련 정책 기준을 내놨다. 만기가 없는 무기한선물은 그동안 하이퍼리퀴드 등 역외 가상자산 플랫폼이 강점을 보여온 시장이다. 미국 밖에서 이뤄지던 거래를 규제시장 안으로 가져오겠다는 정책 변화가 구체적인 상품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SEC의 움직임은 더 분명하다. SEC는 지난 18일 가상자산에 특화한 새로운 규제안인 'Regulation Crypto Assets'를 제안했다. 일정 요건을 충족한 가상자산 관련 자금조달에 별도의 등록 면제와 세이프하버를 제공하는 내용이다. SEC는 규제안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해외에서 사업할 유인을 낮추고 미국 내 가상자산 시장의 자본 형성과 혁신을 촉진하는 것을 명시했다.
폴 앳킨스 SEC 의장도 이날 "혁신가들을 미국으로 다시 불러들이는 길을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과거 미국의 규제 방식이 가상자산 기업과 자본을 해외로 밀어냈다는 게 현 SEC의 판단이다. SEC는 지난 3월에도 CFTC와 함께 가상자산에 대한 증권법 적용 기준을 내놓으며 대부분의 가상자산 자체가 증권은 아니라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미국의 전략은 규제를 없애는 것과는 거리가 있다. 해외 사업자가 미국에서 영업하려면 거래소 등록과 고객보호, 시장감시 등 미국법에 따른 요건을 갖춰야 한다. 대신 사업자가 지켜야 할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해 미국 밖에서 영업할 유인을 줄이겠다는 쪽에 가깝다.
이 같은 변화는 글로벌 가상자산 기업의 미국 진출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는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미국식 회계기준(US GAAP)에 맞춰 재무제표를 정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증시 상장 가능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남은 변수는 의회의 시장구조법 입법이다. SEC와 CFTC는 현재 행정 권한 안에서 규제체계를 정비하고 있지만 가상자산의 증권·상품 구분과 두 기관의 관할권을 장기적으로 확정하려면 의회 입법이 필요하다. 앳킨스 의장 역시 지난 18일 가상자산 시장구조법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가상자산업계에서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글로벌 시장의 무게중심을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의 규제를 피해 역외에서 성장한 거래소와 파생상품 시장을 미국 규제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면 거래뿐 아니라 기업공개(IPO)와 자금조달까지 미국 자본시장으로 흡수할 수 있다"며 "하이퍼리퀴드의 미국 진입 추진은 이런 정책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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