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I가 반드시 머리에 칩을 이식하는 방식으로만 구현되는 것은 아니기에, 저는 비침습형 BCI가 하나의 현실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BCI에 대해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도 결국 '뇌에 무언가를 심는다'는 침습적 이미지 때문일 텐데, 비침습형 BCI는 이러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면서도 기술적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변화와 시도가 단순한 기술적 실험을 넘어, 인간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을 확장하는 유의미한 발전이라고 봅니다. 지금까지 인간은 몸의 한계를 기계로 확장했고, 정보의 한계를 인터넷과 인공지능으로 확장해왔습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어쩌면 인간의 생각, 기억, 학습, 감정, 주의력, 몰입, 창의성, 의사결정 같은 내면의 영역을 더 정교하게 다루는 방향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이 문제를 단순히 '꿈을 조절하는 기술' 정도로 한정해서 바라보는 것은 한계를 너무 좁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꿈 그 자체가 아니라, 지금까지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영역으로 여겨졌던 인간의 내면 경험을 스스로 원하는 방식으로 조작하고,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가능성에 있습니다. 단순히 꿈을 원하는 대로 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과 지식을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얻고, 기억을 관리하며, 학습을 최적화하고, 감정과 몰입 상태까지 조절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도 있다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는 실제로 루시드 드림을 시도해 성공해본 사람으로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루시드 드림은 과학적으로 가능한 현상이지만, 직접 경험해보면 상당히 피곤합니다. 잠을 잤음에도 마치 제대로 자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남기 때문입니다. 의식적으로 꿈을 통제한다는 것은 흥미로운 경험이지만, 동시에 수면의 본래 기능을 방해하는 느낌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BCI와 같은 기술이 발전한다면, 이런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수면 중 의식 경험을 더 안정적으로 다루면서도 피로와 수면의 질 저하를 줄일 수 있다면, 단순한 꿈 조절을 넘어 인간의 시간 활용 방식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인간이 하루 24시간을 더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자신이 원하는 경험과 활동을 설계할 수 있는 구조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혁신이 실제로 가능해졌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까요? 더 높은 효율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고, 더 큰 즐거움과 몰입을 위해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노동을 위해, 더 많은 일을 견디기 위해, 혹은 더 고된 일을 더 오래 수행하기 위해 사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쩌면 힘든 일을 덜 힘들게 느끼도록 만들 수도 있고, 불편함과 피로를 줄여 인간이 이전에는 감당하기 어려웠던 일을 쉽게 수행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 지점은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하는 부분입니다. 개인이 자기 자신을 더 주체적으로 설계하고 확장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타인이나 시스템이 인간의 생각, 감정, 기억, 학습 방식에 개입하는 수단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체적 통제가 될지, 외부에 의한 통제가 될지는 기술 그 자체만으로 결정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과거의 사람이 미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기기에 공백으로 남겨두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이러한 시도와 시작 자체가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진보란 결국 불가능해 보였던 것을 가능으로 바꾸려는 시도와 행동의 반복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류는 늘 자신이 닿지 못했던 영역에 도전했고,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려 했으며, 통제하지 못했던 것을 다룰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흐름이 어렵고 위험한 길일 수는 있어도, 결국 인간이 향하게 될 방향 중 하나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인간이 자신의 생각과 기억, 지식과 감정, 나아가 내면의 경험 전체를 지금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다루고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지도 모릅니다.
그런 점에서 비침습형 BCI는 단순히 기존 BCI의 부담을 줄이는 대안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자신의 정신과 내면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꿈을 통제하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형이상학적 영역까지 기술적으로 이해하고 조절하려는 흐름의 시작으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