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경고론자들의 "영구적 하층민" 패닉은 설득력 없는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새로운 이야기도 아닙니다. 그저 브랜드 이름만 바꾼 '노동량 고정의 오류(lump-of-labor fallacy)'일 뿐입니다.
'노동량 고정의 오류'란 세상에 해야 할 일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기존 노동자들과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존재(다른 노동자, 기계, 혹은 이번 사례의 AI) 사이에 제로섬 경쟁이 벌어진다고 가정합니다. 만약 해야 할 유용한 일의 양이 고정되어 있다면, AI가 더 많은 일을 할 때 인간은 더 적은 일을 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이 전제의 문제점은 우리가 인간, 시장, 그리고 경제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상식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원함과 필요는 결코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거의 한 세기 전에 자동화로 인해 주 15시간 근무 시대가 올 것이라고 유명한 예측을 남겼지만, 당연히 틀렸습니다. 자동화가 '노동 잉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는 그의 말이 맞았지만, 인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쉬는 대신 그 시간을 채울 수 있는 새롭고 다양한 생산적 활동을 찾아냈습니다.
물론 AI가 특정 직무를 없애고 일부 역할을 축소할 것은 자명합니다(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는 증거도 있습니다). 혁신적인 기술이 해방될 때마다 늘 그랬듯, 노동 시장의 형태는 바뀔 것입니다. 그러나 AI가 경제 전반에 걸쳐 영구적인 실업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쓸데없는 공포 마케팅이자, 잘못된 경제학이며, 최악의 역사관입니다. 반대로 생산성 향상은 노동의 가치를 더 높여주기 때문에 노동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킬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들, 외통수라고?" 에이, 설마요.
우리는 파멸론자들—그리고 솔직히 눈을 뜨고 세상을 보는 모든 이들—의 의견 중 한 가지에는 동의합니다. 바로 '인지(cognition)의 비용'이 폭락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 두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영역에서 AI는 점점 더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파멸론자들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AI가 우리 대신 생각을 해 줄 수 있다면, 인류의 '경제적 해자(moat)'는 증발하고 우리의 최종 가치는 제로가 된다." 인간은 외통수에 걸렸다는 겁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앞으로 필요하거나 원할 모든 생각을 이미 다 끝마쳤고, 이제 AI가 인지적 부담의 상당 부분을 짊어지게 되었으니 인간은 도태될 일만 남은 셈입니다.
하지만 실제 전례(와 직관)를 보면, 강력한 투입재의 비용이 떨어질 때 경제는 얌전하게 가만히 멈춰 서 있지 않습니다. 비용이 떨어지면 품질이 올라가고, 속도가 빨라지며, 새로운 제품이 실현 가능해지고, 수요는 밖으로 확장됩니다.
여기서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 지배적인 위력을 발휘합니다. 화석 연료가 처음으로 에너지를 저렴하고 풍부하게 만들었을 때, 우리는 포경선원과 나무꾼의 일자리를 없애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플라스틱'을 발명했습니다!
파멸론자들의 생각과 달리, AI 역시 이와 유사한 효과를 낼 것이라고 기대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AI가 인지적 부담의 큰 축을 담당해 주는 덕분에,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야심 찬 미개척 분야에 자유롭게 도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를 길잡이로 삼는다면, 기술 혁신이 결국 파이의 크기를 키울 것이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지배적인 경제 섹터'는 항상 그보다 더 큰 후속 섹터에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경제 전체의 규모는 훨씬 더 커졌습니다.
오늘날의 빅테크 산업은 과거의 금융, 철도, 제조업이 전성기였을 때보다 규모가 크지만, 경제 전체나 시장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로 보면 여전히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생산성 향상은 제로섬이 아니라, 엄청난 강도의 포지티브섬(positive-sum) 동력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우리가 기계에 수많은 노력을 위임한 결과, 경제와 노동 시장은 오히려 더 커지고, 다양해졌으며, 복잡해졌습니다.
파멸론자들은 혁신의 역사를 무시하고, 인지 비용이 폭락하는 현재의 순간만을 멈춤 화면으로 캡처한 뒤, 그것이 영화의 전체 스토리라고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그들은 직무가 대체되는 현상만 보고 생각을 멈춰 버립니다.
"우리의 인지적 산출량을 10배로 늘릴 수 있게 되었지만, 더 많은 생각을 하기는커녕 다들 배를 두드리며 점심이나 일찍 먹으러 갈 것이다"라는 생각은 상상력의 엄청난 빈곤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관찰력의 결여입니다. 파멸론자들은 이를 '현실주의'라 부르지만, 역사상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러다이트의 실패
생산성의 위대한 도약이 경제를 휩쓸고 지나갔을 때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농업
농업 기계화가 널리 보급되기 전인 20세기 초, 미국 고용의 약 3분의 1이 농업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7년 기준 그 비율은 약 2%로 줄었습니다. 만약 자동화가 영구적인 실업을 유발한다면, 트랙터는 노동 시장을 영원히 망가뜨렸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습니까? 농업 생산량은 거의 3배로 증가하여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지탱했습니다. 그리고 농민들은 영구 실업자가 되기는커녕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산업, 공장, 상점, 사무실, 병원, 연구소, 그리고 결국에는 서비스업과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기술이 평범한 농장 일꾼의 경력 전망을 뒤흔든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노동력(및 자원) 잉여를 해방했고 완전히 새로운 경제를 열어젖힌 것입니다.
⚡️ 전력화
전기의 역사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전력화는 단순히 동력원을 다른 것으로 교체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공장의 축과 벨트를 개별 모터로 대체했고, 공장들이 완전히 새로운 워크플로우를 중심으로 재편되도록 강제했으며, 완전히 새로운 범주의 소비자 및 산업용 제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술 혁명의 뚜렷한 단계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현상입니다. 카를로타 페레스가 그녀의 저서 《기술 혁명과 금융 자본》에서 기록했듯, 거대한 초기 투자와 금융적 관심이 쏠리고, 내구재 비용이 크게 떨어진 후, 내구재 제조업체들의 세대적 호황이 이어집니다.
전기가 생산성의 기적을 일으키는 데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20세기 전환기에 미국 공장 중 기계 동력으로 전기를 사용하는 곳은 5%에 불과했고, 집에 전기가 들어오는 가구는 10% 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1930년에 이르자 전기는 제조업 동력의 거의 80%를 공급했고, 노동 생산성 성장률은 수십 년 동안 두 배로 뛰었습니다.
노동 수요를 파괴하기는커녕, 생산성 향상은 더 많은 제조업, 더 많은 영업 사원, 더 많은 대출, 더 많은 상업 활동을 의미했습니다.
세탁기나 자동차 같은 노동 절약형 기기의 2차 효과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모두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을 더 가치 있는 활동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자동차 가격이 떨어지자 자동차 생산과 고용 모두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범용 기술(general-purpose technology)이 하는 일입니다. 경제를 재편하고 유용한 일의 지평을 넓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현상을 반복해서 목격합니다. 비지칼크(VisiCalc)와 엑셀(Excel)이 장부 기록원(bookkeepers)들을 파멸시켰습니까? 단연코 아닙니다. 훨씬 더 효율적인 계산 기술 덕분에 장부 기록 업무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재무 기획 및 분석(FP&A)이라는 전체 산업이 창출되었습니다.
우리는 약 100만 명의 '장부 기록원'을 잃었지만, 약 150만 명의 '재무 분석가'를 얻었습니다.
새로운 서비스 부문 일자리들
직무 대체가 언제나 경제의 인접한 부분에서 일자리 성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생산성 잉여가 완전히 무관한 산업에서 순수한 신규 일자리 성장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AI로 인해 일부 사람들만 환상적인 부자가 되고 나머지는 뒤처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최소한, 그 환상적인 부자들은 그 돈을 어딘가에 써야 할 것이고,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완전히 새로운 서비스 산업을 맨땅에서 만들어낼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