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천 년 전.
밤이었다.
대륙의 중심, 지금은 '천무평원(天武平原)'이라 불리는 광활한 벌판 위로, 하늘이 갈라졌다.
그 시대의 인간들에게 하늘이란 신의 영역이었다. 해가 뜨고 달이 지는 것은 신의 뜻이며, 별은 신의 눈이라 믿었다. 그러니 하늘이 찢어지며 빛이 쏟아졌을 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땅에 엎드리는 것뿐이었다.
신이 노했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노한 것은 신이 아니었다.
────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바위처럼 보였다.
직경 수백 장(丈)에 달하는 거대한 검은 덩어리가 평원에 충돌했고, 대지가 뒤집어졌다. 충격파가 반경 백 리를 초토화시켰으며, 먼지 구름이 하늘을 덮어 석 달간 해를 가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천강석(天降石)이라 불렀다.
하늘이 내린 돌.
후대의 인간들은 천강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이한 에너지를 흡수하며 '기(氣)'를 다루는 법을 터득했다. 최초의 무인(武人)이 탄생했고, 문파가 세워졌으며, 무림(武林)이라는 거대한 세계가 만들어졌다.
3천 년의 역사.
구파일방(九派一幇).
마도오대세력(魔道五大勢力).
수십만 무인의 피와 땀으로 쌓아 올린 강호(江湖).
그 모든 것의 뿌리는, 하늘에서 떨어진 하나의 '돌'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다.
왜 그 돌은 떨어졌는가.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었는가.
────
아무도 몰랐다.
천강석의 표면 아래, 수천 겹의 바위와 흙에 묻힌 그 중심부에서——
무언가가 살아 있었다는 것을.
3천 년간.
단 한 번도 눈을 뜨지 못한 채.
단 한 번도 죽지 못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 ◇ ◇
3천 년 후.
만인합공진(萬人合攻陣).
핏빛 하늘 아래, 한 남자가 서 있었다.
진무혁(陳武赫). 잔혈마제(殘血魔帝).
태어날 때부터 혈맥이 막혀 무인 취급도 받지 못하던 잡역 출신. 열다섯에 우연히 천마심법(天魔心法)을 손에 넣은 뒤, 20년 만에 마도를 통일하고 마제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 모든 칼끝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만 명의 무인.
정도 구파일방. 마도 잔존 세력. 그리고 이름 없는 어둠 속의 그림자들까지.
그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만 갈래의 검기(劍氣)가 세상의 빛을 삼켰다.
진무혁은 웃었다.
"하."
피가 흘렀다. 왼팔은 이미 없었다. 오른쪽 눈도 감각이 없었다. 단전은 반 이상 파쇄되어 있었고, 남은 내력도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웃고 있었다.
왜냐면, 그건 그가 할 줄 아는 거의 유일한 짓이었으니까.
"좋다."
진무혁이 입을 열었다.
"만 명. 이 세상의 모든 놈들이 다 모여서 겨우 하나를 죽이려고 이 난리야."
피를 뱉었다. 핏덩이 속에 이빨이 섞여 나왔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고? 묻는 거야, 진심으로."
대답하는 자는 없었다. 만 명의 무인은 침묵 속에서 살기(殺氣)만을 뿜어냈다.
진무혁은 그 침묵 속에서 한 사람을 바라봤다.
만인합공진의 최전선. 하얀 도포에 한 자루 검을 든 남자.
검제(劍帝) 한무경(韓無景).
천검맹(天劍盟)의 맹주. 정도무림의 최강자. 그리고 무혁이 전생에서 유일하게 존경했던 사람.
"무경아."
진무혁이 불렀다. 옛날처럼.
한무경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하지만 검을 잡은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왜? 예전엔 잘만 불렀잖아. '무혁아, 언젠간 같이 술 한 잔 하자'고 했던 놈이 누구야."
"그때의 너와 지금의 너는 다르다."
"다르긴. 뭐가 달라."
진무혁은 남은 한쪽 눈으로 한무경을 똑바로 봤다.
"넌 처음부터 날 죽일 생각이었어. 내가 마제가 되기 전부터. '잔혈'이라 불리던 시절부터. 왜냐면, 네 뒤에 있는 놈들이 그렇게 시켰으니까."
한무경의 표정이 굳어졌다.
진무혁의 시선이 한무경의 뒤로 향했다. 만 명의 무인 너머, 어둠 속에 서 있는 그림자들.
천기각(天機閣).
이름도, 얼굴도,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자들.
"너네가 봉인했지?"
진무혁이 말했다. 자신의 가슴을 짚으며.
"내 혈맥. 태어날 때부터 막혀 있던 이것. 자연적 기형이 아니라 너희가 일부러 봉인한 거야."
어둠이 대답하지 않았다.
진무혁은 웃음을 터뜨렸다. 피가 입가에서 흘렀다.
"몰랐어. 서른다섯 해를 살면서 한 번도 몰랐어. '왜 나만 이런 몸으로 태어났을까' 수천 번을 원망했는데, 그게 누군가의 작품이었다니."
검기가 하늘을 갈랐다.
만인합공진이 발동했다.
만 갈래의 칼날이 동시에 진무혁을 향해 쏟아졌다.
진무혁은 눈을 감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몸속 깊은 곳을 들여다봤다. 혈맥의 가장 깊은 곳. 봉인이 새겨진 그 너머를.
거기에 뭔가가 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이질적이고 거대한 존재감.
'……뭐야, 이건.'
만 갈래의 검기가 육체를 관통했다.
뼈가 부서졌다.
살이 찢어졌다.
피가 터졌다.
세상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죽는군."
진무혁의 의식이 꺼지기 직전이었다.
어둠 속에서 울린 그 목소리는,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언어 같기도 했고, 머릿속에 직접 새겨지는 사념(思念) 같기도 했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냥 오래된 목소리.
3천 년을 기다린 자의 목소리.
"오래 걸렸다."
'……누구야.'
"네 피 속에서 3천 년을 잠든 자다."
'뭔 개소리야.'
"죽어가면서도 입이 험하군. 네 조상들과는 다른 모양이야."
진무혁은 웃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육체가 없었다. 아니, 죽었다. 분명히 죽었다. 만 갈래의 검기에 몸이 소멸했다.
그런데 의식이 남아 있었다.
'죽었는데 왜 생각이 돼?'
"내가 붙잡고 있으니까. 네 혼(魂)을."
'왜?'
"네 봉인이 풀리면서 나도 풀려났다.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거래를 하자."
'……거래?'
"나는 이 별에서 벗어나고 싶다. 너는 죽고 싶지 않다. 이해관계가 맞지 않나?"
'이미 죽었는데.'
"아직 아니다. 네 피가 아직 남아 있다. 전장 바닥에 뿌려진 네 피. 그 안에 내 힘의 파편이 있다. 그걸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
진무혁은 어둠 속에서 생각했다. 죽은 자의 사고(思考)란 이상하게 맑았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네 의식을 과거의 네 육체로 보낸다. 대신 나도 함께 간다. 네 피 속에서."
'조건은?'
"간단하다. 살아남아라. 강해져라. 그리고 내 왕을 깨워라."
'……싫다고 하면?'
"그럼 여기서 같이 소멸이다. 나도, 너도."
침묵이 흘렀다.
진무혁은 생각했다. 전생을 돌아봤다. 잔혈이라 불리던 시절. 천마심법을 손에 넣던 날. 마도를 통일하던 순간. 그리고 만인의 배신 속에서 죽던 오늘.
서른다섯 해의 삶.
후회는 없다고 생각했다.
거짓말이었다.
후회투성이였다.
왜 그때 그 손을 잡지 못했는가.
왜 그때 그 말을 하지 못했는가.
왜 그때 그 아이를 구하지 못했는가.
살고 싶었다.
한 번만 더.
'……좋아.'
진무혁은 대답했다.
'거래하지. 대신, 한 가지 수정할 게 있어.'
"뭐냐."
'네 왕을 깨우는 건, 내가 판단한다. 깨울 가치가 있으면 깨우고, 아니면 안 깨운다. 그건 양보 안 해.'
긴 침묵.
그리고,
"……하."
웃음이었다.
3천 년 만에, 그 존재가 처음으로 웃었다.
"네 주제에 나와 조건 협상을? 죽어가는 주제에?"
'죽어가는 놈이 제일 무서운 법이야. 잃을 게 없거든.'
"……좋다."
목소리가 바뀌었다. 오만함은 여전했지만, 그 안에 뭔가——인정(認定)에 가까운 것이 섞여 있었다.
"이름이 뭐냐, 인간."
'진무혁.'
"나는 네 종족의 언어로 번역하면 '흑(黑)'이라 불렸다.'
어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무혁의 의식을 감싸며. 무언가 거대한 힘이 시간을 거스르기 시작했다.
"가자, 진무혁."
흑의 목소리가 울렸다.
"네 피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세상이 뒤집어졌다.
시간이 거슬렀다.
3천 년의 역사가 흘러가고, 무림이 세워지고, 무수한 영웅호걸이 태어나고 죽는 것이 한순간에 역재생되었다.
그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