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비즘을 처음 보면 솔직히 이런 생각부터 듭니다. 왜 얼굴을 굳이 찌그러뜨리고, 눈은 옆에 붙이고, 코는 이상한 방향으로 돌려놓은 걸까? 그림을 못 그려서 그런 것도 아니고, 단순히 괴상하게 보이려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1900년대 초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가 고민했던 것은 “우리가 실제로 세상을 보는 방식이 정말 사진처럼 한 장면뿐일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사람을 볼 때 우리는 정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옆모습도 보고, 움직이면서 다른 각도도 보고, 기억 속 모습까지 함께 떠올립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그림은 한 시점에서 본 장면 하나만 캔버스에 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큐비즘 작가들은 하나의 대상을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한 화면에 동시에 넣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의 정면과 옆면이 함께 보이고, 기타나 병, 테이블 같은 물건도 여러 각도로 잘라 다시 조립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보는 뒤틀린 얼굴과 기하학적인 조각들은 바로 이 과정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시에는 사진도 이미 등장해 현실을 꽤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화가가 사진처럼 똑같이 그리는 것만이 미술의 역할일 필요는 없었습니다.
피카소와 브라크는 현실을 그대로 복사하기보다, 현실을 어떻게 보고 이해하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후에는 신문, 벽지 같은 실제 재료를 캔버스에 붙이는 콜라주까지 등장합니다. 그림은 더 이상 세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창문’이 아니라, 잘라내고 다시 조립할 수 있는 하나의 공간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큐비즘의 핵심은 단순히 “사람 얼굴을 이상하게 그린 그림”이 아닙니다. 오히려 한 가지 시점으로만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미술의 오래된 규칙을 깨버린 운동에 가깝습니다.
결국 큐비즘이 바꾼 것은 그림의 모양보다도, 우리가 그림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