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보라는 이름에는 항상 ‘단색화’라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그래서 작품을 잘 모르면 흰색이나 검은색 화면에 비슷한 선을 계속 반복하는 그림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후기 작품을 보면 빨강, 노랑, 초록처럼 예상보다 강한 색도 많이 등장합니다.
박서보 화가가 1967년부터 시작한 "묘법(Ecriture)"은 아직 마르지 않은 흰 물감 위에 연필로 선을 반복해서 긋는 작업이었습니다. 특정한 대상을 그리는 것보다 계속해서 선을 긋는 행위와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본 것입니다. 이후에는 한지를 사용하면서 종이를 밀어내듯 선을 만들고, 화면에 실제로 골이 생기는 방식으로 발전합니다.
2000년 무렵부터는 색도 크게 달라집니다. 박서보는 일본에서 붉게 물든 단풍을 본 뒤 자연의 색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2001년부터 빨강, 노랑, 초록 등 강한 색을 사용한 ‘색채 묘법’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본인은 이런 색을 관람자의 피로를 덜어주는 ‘치유의 색’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박서보 화가의 작품을 보면 ‘단색화’가 단순히 한 가지 색으로 그린 그림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순 쌀먹은 아니에요. 그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그림을 그렸느냐보다, 같은 작업을 얼마나 반복하고 또 어떻게 조금씩 바꿔왔느냐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것도 한 평생을요.
결국 박서보가 평생 반복한 것은 같은 그림이 아니라, 반복 속에서 조금씩 달라지는 그림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