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자극적인 내용이지만 읽는 내내 감정 이입이 잘 됩니다.
중간 중간 감정을 건드는 문장들이 참 와닿네요
어느 날 밤, 눈은 충혈되고 늘 그랬듯이 만취 상태로,
제프 베조스가 “Regret Minimization Framework(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라는 걸 설명하는 영상을 클릭했다.
개념은 아주 단순했다.
80살이 된 자기 자신을 상상해라.
지나온 삶을 돌아봤을 때, 하지 않아서 후회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거다.
@chameleon_jeff는 내가 후회할 여지를 남겨두지 않게 해줬다.
이쯤 되면 이름이 Jeff인 사람은 그냥 내 DM으로 들어와라.
통계상 너도 내게 행운일 가능성이 있다.
그는 다른 애들처럼 저유통량·고 FDV 런칭을 할 수도 있었고,
가능한 모든 이득을 쥐어짜서 개인만 배부르고 리테일에게는 쓰레기 토큰만 떠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전체 공급의 31%를 커뮤니티에 줬다.
나 같은 사람들,
시간과 신념밖에 남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난 절대 그걸 잊지 않을 거다.
절대 그 미션을 배신하지 않을 거다.
그가 만드는 걸 함부로 욕하지도 않을 거다.
그가 알든 모르든, 그가 한 일은 완전히 부서진 한 남자에게 인생을 다시 시작할 기회를 준 것이다.
어떤 사람은 종교를 찾고,
어떤 사람은 멘토를 찾는다.
나는 그냥, 어떤 가명의 개발자가 “그냥 제대로 작동하는 걸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든
탈중앙화 파생상품 거래소를 찾았을 뿐이다.
인생은 가끔 이렇게 이상한 방식으로 흘러간다.
아래는 전문입니다. 내용이 기니까 심심할 때 읽어보세요.
저도 과연 저 사람에게 하이퍼리퀴드 같은 프로젝트를 만날 수 있을까요? 부럽고 대단하고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My Life Before
나는 트래드파이(전통 금융)에서 파생상품 데스크에 약 11년을 있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무 시간은 지옥이었지만, 돈은 괜찮았다.
교외에 있는 집, 꿈에 그리던 차, 꿈의 아내, 예쁜 아이 둘까지 다 있었다.
하지만 결혼은 수년 전부터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같은 집에 사는 룸메이트였지, 진짜 파트너는 아니었다.
하루 16시간 일하는 게 내 도피처가 되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결혼 생활 붕괴에 기여했다. 그걸 떠올리면 지금도 꽤 슬프다.
그러다 2020년이 왔다.
코로나19 크래시가 모든 시장을 다 때려 부쉈다.
회사에서는 “구조조정(restructuring)”을 시작했다. 쉽게 말하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자르는 거였다.
10년 넘게 모든 걸 바쳤는데, 결국 통보를 받았다.
박스 하나 쥐어주고, HR이 나를 범죄자 취급하듯 주차장까지 바래다줬다.
그날 집에 돌아갔을 때 난 아내 품에 안겨 울 생각이었다. 진짜 인생 최악의 날이었고, 아직도 그날을 아주 선명히 기억한다.
하지만 공감은커녕,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 차가웠다. 위로해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그녀는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꽤 오래 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My Downfall..
그 다음에 벌어진 일은 지금도 글로 쓰기가 역겹다.
이혼 소송 과정에서 그녀는 내가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했고 위험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전부 다 거짓이었다. 0, 하나도 사실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시스템은 사실보다 주장과 이미지(옵틱스)만 본다.
한 번 그런 혐의가 붙으면, 그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소문이 어떻게 퍼졌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그녀가 친구들에게 그런 거짓말을 퍼뜨렸던 것 같다. 어느 순간 아무도 나와 연락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11년 경력에 solid한 트랙레코드가 있어도, 아무 회사도 나를 채용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심지어 매크로는 다시 거대한 불마켓으로 돌아가던 시기였다.
그녀는 가족 돈을 뒤에 두고, 빅5 로펌 소속 변호사를 데리고 법정에 나타났다. 제대로 된 대표, 완전체 풀셋.
반면 나는, 거의 무일푼에 백수나 다름없는 신세로, 아이들을 위해 변론하러 나온 처지였다.
게다가 양육권 심리 때 숙취 상태였으니… 결과는 뻔했다.
법정에서 난 그냥 박살났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애초에 싸움이 안 됐다.
집도 잃었다. 남아 있던 것 대부분은 소송 비용과 합의금으로 날려버렸다.
그래도 그것조차 최악은 아니었다.
나는 내 아이들을 잃었다.
법원은 “조사 중”이라는 명목으로 그녀에게 단독 양육권을 줬다.
그 “조사 중(pending)”이라는 말은 몇 달이 되었다가, 1년이 되었다가, 더 길어졌다.
매일 밤 같이 재워주던 사이에서, 전화로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싸울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돈이 없어서.
그냥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무죄라는 걸 제대로 입증할 돈이 없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내게서 빼앗기는 걸 지켜봐야 했다.
몇 년 동안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이 문장 쓰다가도 한동안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멍하니 있었다.
그렇게 나는 직업도, 가족도, 친구도 없는 상태가 됐다.
거짓 주장들 때문에 고용 불가능한 사람이 되었고,
벽이 너무 얇아서 매일 밤 옆집 TV 소리가 다 들리는 그런 싸구려 아파트에서,
빠르게 바닥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저축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러다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진짜 심각하게 마셨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금단 증상을 막으려고 보드카를 들이켤 정도.
거울에 비친 자신을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서 아예 거울 자체를 피하게 되는 그런 상태.
어느 밤에는… 자세히 적진 않겠지만, 새벽 3시에 부엌 바닥에 주저앉아서
“세상은 내가 없는 게 더 나을까?”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물었던 밤이 있었다.
그게 내 인생의 바닥이었다.
The Video That Changed Everything
어떻게 그 영상을 보게 됐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 아마 유튜브 알고리즘의 이상한 구석을 타고 들어갔던 것 같다.
어느 날 밤, 눈은 충혈되고 늘 그랬듯이 만취 상태로,
제프 베조스가 “Regret Minimization Framework(후회 최소화 프레임워크)”라는 걸 설명하는 영상을 클릭했다.
개념은 아주 단순했다.
80살이 된 자기 자신을 상상해라.
지나온 삶을 돌아봤을 때, 하지 않아서 후회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는 거다.
그는 자신이 편한 금융 직장을 그만두고 아마존을 시작한 이야기를 했다.
모두가 미쳤다고 했던 결정.
심지어 그의 상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주 좋은 아이디어예요. 다만 이미 좋은 직장이 없는 누군가에게는요.”
나는 어두운 아파트 안에서, 바닥에 빈 병을 둔 채 그 영상을 보고 있었고,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부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의미로.
난 30대였다.
운이 좋으면 앞으로 40년, 50년이 남아 있을지도 몰랐다.
정말 그 시간을 이렇게 보낼 건가?
자기 연민에 빠져 죽을 날만 기다리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보다 나은 걸 보여줘야 했다.
아이들을 위해 싸워야 했다.
80살이 된 나 자신을 떠올렸다. 모든 걸 돌아보는 장면.
그리고 아주 명확하게 깨달았다.
나는 이걸 후회할 거라는 걸.
이혼도, 직장을 잃은 것도 아니다.
아이들과 보낼 시간을 포기한 걸 후회할 거라는 걸.
아이들을 포기한 것을 후회하게 될 거라는 걸.
스스로를 방치해서, 그저… 노력하길 멈춰버린,
초라한 껍데기로 남는 걸 후회할 거라는 걸.
나는 그걸 소리 내서 말했다.
텅 빈 아파트에서 나 혼자. 울음을 참다 목이 메인 목소리로.
“그냥 할 거야. 뭐가 됐든. 어떻게든 할 거야.”
그때는 “그게”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날 밤 무언가 진짜로 바뀌었다.
말뿐이 아니라.
The Rebuild
다음 날 아침에 갑자기 인생이 새로 시작된 사람처럼 일어났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변화는 느리고, 지저분하고, 수많은 좌절과 다시 포기하고 싶어지는 날들의 연속이다.
난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일어나야 할 이유가 필요했다.
예전부터 크립토에 관심은 조금 있었다. 2017년에 비트를 사긴 했는데, 너무 일찍 팔아버렸었다.
하지만 그 생태계 깊은 곳까지 파보진 않았다.
이제는 시간만 많았고, 증명해야 할 것도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