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오는 '정통'판타지 소설을 보다 보면, 생각보다 현대에서 넘어왔다는 설정이 많다.(사실 이 설정만으로 '정통'을 부정한다)
현대인이었던 주인공이 판타지 세계에서 살아가는 설정.
물론 고자극이나 회귀·빙의 같은 클리셰를 위한 장치이기도 하지만,
과거 판타지 소설이라면 작가가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독자가 그 세계의 규칙을 처음부터 학습해야 했다.
화폐 단위가 무엇인지, 거리는 어떻게 재는지, 계급은 어떻게 나뉘는지, 마법은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
그런데 지금의 콘텐츠 소비 환경은 굉장히 빠르다. 게임을 하다가 웹툰을 보고, 쇼츠를 넘기다가 웹소설을 읽는다. 심지어 병렬로 하기도 한다.
독자가 하나의 콘텐츠에 들어가서 새로운 세계의 문법을 오랫동안 학습할 여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단위와 비유를 차용하면 매우 직관적으로 와닿는다.
“이 정도면 현대 기준으로 보면 상당한 부자다.”, "이 정도 금액은 현대 4인가족 월급정도"
이런 식으로 설명하면 독자는 별도의 학습 없이 바로 감을 잡을 수 있다.
작가 입장에서도 훨씬 효율적이다.
그래서 최근의 판타지 소설들을 보면 세계관 자체는 이세계인데, 그것을 설명하는 언어는 굉장히 현대적이다.
그리고 이건 웹소설의 설정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최근 콘텐츠들의 컨셉이나 세계관을 보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보다는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무언가를 가져와서 익숙한 문법 위에 새로운 경험을 얹는 방식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게임도 그렇고, 웹툰도 그렇고, 밈도 그렇고,,
결국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새로운 것을 얼마나 빠르게 이해시키느냐가 중요해진 시대가 된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면 지금의 IP 기반 TCG나, 익숙한 장르의 게임(리니지뇌절)이 반복해서 출시되는 이유도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이미 알고 있는 IP와 장르를 가져오면, 유저에게 새로운 세계관과 규칙을 처음부터 학습시킬 필요가 없으니까.
어쩌면 지금 콘텐츠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익숙함을 통해 얼마나 빠르게 새로운 경험으로 진입시키느냐가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