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프로젝트의 한국 진입을 돕는 GTM 파트너로 일하는 입장에서 2025년은 묘하게 양가적인 해였던 것 같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분명 바빴습니다. 프로젝트는 쏟아졌고, 팀과 시장 사이에서 브릿지 역할을 하는 조직 GTM 펌, 마케팅 에이전시, 리서치 펌은 꽉찬 일정으로 매우 바쁘게들 움직이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개인적으로는 이 바쁨이 마냥 좋은 느낌만 들진 않았고, 오히려 피날레에 가까워져 과열된 게 아닐까 하는 불길한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러한 생각의 중심에는 한국 시장의 매력도가 떨어졌다고 느낀 데 있습니다. 한국 시장이 가장 빛났던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솔직히 ‘알트코인 유동성 하입’이 만들어낸 드라마가 있었던 게 크다고 봅니다. 상장 펌핑, 가두리 펌핑, 단기 과열의 서사들. 해외 프로젝트가 한국을 매력적으로 보던 이유도 빌더/팬덤 생태계보다도 그냥 볼륨/변동성이였다고 생각하구요. 그런데 2025년에는 그 구조가 눈에 띄게 무너졌습니다. 리테일이 예전처럼 움직이지 않습니다. 움직이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움직이지 않기로 학습한 듯한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1️⃣ 거래소의 스탠스 변화
거래소쪽 분위기 변화는 상징적입니다. 업비트와 빗썸은 올해 작년 대비 몇 배 수준의 신규 상장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시장이 기대하던 ‘상장 펌핑의 신화’는 재현되지 않았습니다. 과거처럼 한국 시장이 글로벌 관심을 끌어당기는 장면도 드물었습니다. 특히 업비트의 행보는 이질감이 컸습니다. 업비트는 원래 상장 심사가 엄격했고, 그 엄격함이 오히려 유동성을 상장 자산에 집중시키며 시장을 리드해왔습니다. 그래서 한국 시장은 “업비트가 고른 자산”이라는 프리미엄으로 글로벌의 시선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업비트는, 이전의 보수적인 스탠스와는 정반대의 방향성을 보였습니다. 대규모 상장을 쏟아내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듯한 느낌, 그런 장면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그 스탠스가 아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부 주도의 상장 심의 가능성, 네이버–두나무를 둘러싼 여러 관측, 거래소 비즈니스 외 스테이블코인 비즈니스로의 확장 등.
결국 거래소 입장에서 “미래 먹거리가 거래소 밖에 있다”는 판단이 있었다면, 상장 프리미엄을 지키는 전략보다 상장을 늘려 사업 운영을 최적화하려는 유인이 생길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한국 시장의 강점이었던 ‘집중 유동성’과 ‘상징성’이 동시에 희석되었다는 점입니다.
2️⃣ VC 투자 → 프로덕트 런칭 → 마케팅 → 에어드랍 → TGE → 상장
프로젝트 측면에서도 올해는 전형적인 패턴의 한계를 더 선명하게 확인한 해였습니다.
VC 투자 → 프로덕트 런칭 → 마케팅 → 에어드랍 → TGE → 상장 이제 이 구조는 더 이상 메리트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적당한 빌딩으로 포장해서 빠르게 ‘TGE’를 소비하는 팀에 대한 교과서적인 구조로 더 인식되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 방식이 꽤 유리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덕트를 끝까지 완성하고 장기 유저를 확보하는 팀보다도, 일정 맞춰 런칭 이벤트를 만들고, 마케팅으로 하입을 뽑고, 에어드랍으로 동력을 붙여서 TGE까지 밀어붙이는 팀이 훨씬 빠르게 시장의 관심을 가져가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백커가 아무리 좋아도, 모금액이 우량해도, 내러티브가 아무리 강해도, 그결국 그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담보하는 프로젝트의 구조가 아니라는 점을 모두가 알아버렸습니다. 텐배거, 백배거는 앞으로 이런 템플릿을 띄는 프로젝트에서 나오기 정말 힘들어 보입니다. 단순히 시장이 성숙해서가 아니라, 운영 방식 자체가 기대수익의 상단을 막아버리는 느낌이 강합니다.
요즘 잘 나가는 알트코인은, 제 눈에는 거의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시장 상황, 마케팅, 내러티브 같은 것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그냥 묵묵히 프로덕트 퀄리티에 올인해서, 완성형 제품을 내놓고 생태계에 환원까지 해내는 팀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대놓고 크라임을 질러버리는 팀들. 올해는 이상하게 그 사이 구간이 더 얇아진 느낌이 들었습니다.
3️⃣ 야핑(얍핑)·인포파이: 단기 효율과 장기 팬덤의 부재
그 구조의 한복판에 ‘야핑(얍핑)·인포파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케팅이나 노출 측면에서 단기 효율은 인정합니다. 프로젝트 팀 입장에서는 적은 물량으로 트위터 단기 바이럴을 뽑아낼 수 있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유동성으로 이어지는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대부분 TGE 전 하입을 위한 장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느낌이 더 강하고요. 근본적으로는 ‘장기 팬덤’이 형성되지 않는 게 더 큰 문제 같습니다. 유저가 프로젝트에 메리트를 느끼고 남아야 하는데, 야핑은 본질적으로 TGE 전에 목숨을 끌어다 쓰는 방식에 가깝습다고 봅니다. TGE 이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과거 에어드랍 메타가, 리테일과 프로젝트 모두에게 순기능이 있었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최소 테스트넷이라도 참여하게 만들었고, 발품을 직접 팔아가며 제품을 써본 사람에게 생태계 물량을 배분했습니다. 참여자들이 디스코드에서 정보를 뒤지고 공유하며 공동체적 애정을 쌓았고, 그 애정이 곧 홀딩 성향으로 연결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때도 투기적 요소는 컸습니다. 근데 최소한 “참여 → 이해 → 애정 → 보유”라는 경로는 있었습니다.
2025년의 구조는 그 경로를 끊고 “노출 → 보상 → 매도”만 남겨버린 느낌이 강합니다.
4️⃣ 리테일들은 안다
그 결과, 시장은 더 똑똑해졌습니다. 정확히는 더 냉정해졌습니다.
신규 코인을 사면 폭망할 확률이 높다는 것,
에어드랍 받은 물량은 빨리 파는 게 고점일 때가 많다는 것,
당장 쌀먹 가능한 에어드랍만 파밍하는 게 이득이라는 것,
내 돈이 들어가는 리스키한 참여는 웬만하면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것,
내러티브가 아무리 멋져도, 매도압력은 어쩔 수 없다는 것. 이 학습이 2025년에 더 확고해졌습니다.
문제는 이 학습이 시장을 ‘안정화’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악순환’을 고착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점입니다.
리테일이 빨리 판다 → 프로젝트는 더 적게 할당한다 → 이득이 줄은 리테일들의 참여율이 떨어진다 → 팀은 더 단기 바이럴에 의존한다 → 모두가 더 빨리 팔게된다.
결국 프로젝트 입장에서도 런칭을 해봤자, 베스팅 시점에 얻는 것이 크지 않다고 느끼게 되고, 그 와중에 밸류는 낮아지는 것이 당연해지니 리워드의 총량은 더 줄어듭니다.
최근 카이토 얍핑에서 이탈하는 유저가 늘어나는 장면은, 단순히 한 서비스의 피로도가 아니라 “이 시장의 보상 구조가 더 이상 신규 참여자를 설득하지 못한다”는 징후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