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소수 니치를 빼면 진짜 탈중앙 금융은 남지 않았다는 것
논리는 정의의 문제입니다.
크론예는 진짜 DeFi라면 탈중앙·불변(immutable)·중개자 없음이라는 세 조건을 갖춰야 하는데, 오늘 돌아가는 프로토콜 대부분은 이걸 못 지킨다고 봤습니다.
회사·큐레이터·리스크위원회 같은 전통 은행의 요소들이 이미 중개자로 들어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이름을 새로 붙입니다.
지금의 프로토콜은 DeFi가 아니라 온체인 금융(onchain finance)이라는 새 패러다임이라는 것
탈중앙성과 불변성을 일부 내주고 실용성을 얻은 형태입니다.
데이터도 이 진단과 겹칩니다.
DeFi 예치금(TVL)은 10개월 새 $1,670억에서 $750억으로 반토막났습니다.
유럽중앙은행도 3월 보고서에서 Aave·유니스왑 등의 거버넌스 토큰 상위 100명이 공급의 80% 이상을 쥐고 있다며 탈중앙성에 의문을 던졌습니다.
며칠 전 맷 호건은 이 프로토콜들이 수익을 토큰에 환원하는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 봤는데, 크론예는 바로 그 성숙이 탈중앙성의 포기라고 짚습니다.
크립토가 실용을 얻는 대가로 정체성을 내주고 있는 것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