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는 firm 설계가 맞았던 더 큰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야망 자체가 바뀌고 있었다.
예전의 실리콘밸리
운영체제
디스크드라이브
칩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즉, 다른 산업이 쓰는 도구(tool)를 만들어 파는 회사가 중심이었다.
바뀐 뒤의 실리콘밸리
Airbnb는 호텔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숙박 산업에 직접 들어갔다.
Uber/Lyft는 택시 디스패치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운송 제공자가 됐다.
Tesla는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회사가 아니라 차 회사가 됐다.
Facebook은 미디어 회사에 광고 기술을 파는 게 아니라 스스로 미디어가 됐다.
즉, 실리콘밸리는 더 이상 “도구 공급자”가 아니라
기존 산업을 직접 침범하는 full-stack competitor가 되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 변화는 벤처 firm에도 요구를 바꿉니다.
더 큰 자본
더 깊은 네트워크
더 많은 운영 지원
더 장기적인 스케일 감당 능력
AI 시대에 이건 더 극단적으로 드러난다고 Marc는 말합니다.
이제 승자들은 수십억, 때로는 수백억 달러를 조달한다.
옛날식 1000만~5000만 달러 체크의 세계는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Jim Clark 이야기: SGI, founder-manager 갈등, 그리고 “미래를 먼저 보는 사람”의 고독
Marc가 보는 Jim Clark은:
실리콘그래픽스(SGI)를 만든 전설적 인물
3D 그래픽과 컴퓨터 그래픽 혁명의 핵심 인물
Jurassic Park, Terminator 2 같은 영화의 시각효과 시대를 여는 기술의 핵심
그 시대의 “가장 멋진 회사”를 만든 사람
기술, 창업, 카리스마를 모두 갖춘 인물
Marc의 서사는 이렇습니다.
Jim Clark는 엄청나게 창의적이고 변덕스럽고 강한 founder type이었다.
VC들은 전형적으로 HP/IBM식 훈련을 받은 professional manager를 데려왔다.
그 관리자 아래 SGI는 규모를 크게 키우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갈등이 생겼다.
갈등의 본질:
Jim: 지금 잘 돌아가는 방식은 미래엔 안 먹힌다. 지금 바꿔야 한다.
Manager: 지금 잘 되고 있으니 흔들지 마라. 미래는 미래에 가서 보자.
Jim은 두 가지를 아주 일찍 예견했다고 Marc는 강조합니다.
고가의 그래픽 워크스테이션 기능은 결국 저가 칩/보드/PC로 내려간다
이것을 우리가 하지 않으면 망한다.
-> 첫 번째는 결국 Nvidia의 길이었다.
컴퓨터는 독립형 기계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다
미래의 가치는 개별 기계보다 연결망에 있다.
-> 두 번째는 인터넷의 길이었다.
Jim은 맞았다.
SGI는 그 길을 못 갔다.
Jim은 결국 회사를 떠납니다.
그리고 Marc가 Jim을 처음 만났을 때, Jim은 바로 그 상태였습니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 회사여야 한다.
세상의 변화 방향을 먼저 타야 한다.
SGI는 그 일을 못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회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맞는 미래를 봤지만 기존 조직 안에서 구현하지 못한 founder”
Marc와 Jim은 여러 아이디어를 검토합니다.
SGI식 그래픽 칩 회사 재창업
→ 너무 어려웠고, SGI와 정면 경쟁하고 싶지 않았음
인터랙티브 TV / 오늘날의 Netflix 비슷한 구상
→ 너무 이른 시기였음
Nintendo 64 기반 온라인 게임 네트워크
→ 오늘날의 Xbox Live/PlayStation Network 같은 구상
→ 이것도 시기상조라고 판단
Netscape는 처음부터 명확한 단일 비전으로 출발한 게 아니라,
옳은 사람 둘이 모여 시대의 변화를 기다리며 여러 미래를 탐색한 끝에 잡아낸 파도였습니다.
Mosaic, NSFnet, 상업화 금지, Eternal September: 인터넷이 “연구망”에서 “대중망”이 되는 순간
Marc는 자신이 일리노이대에서 Mosaic을 만든 이야기를 설명합니다.
핵심은:
기존 웹브라우저는 텍스트 기반이었다.
그래픽도, 직관적 UI도, 일반인이 쓸 법한 경험도 부족했다.
Mosaic은 그걸 사람 친화적인 완성형 브라우저로 만들었다.
웹서버 쪽도 사실상 대중적으로 쓸 수 있는 형태로 정비했다.
당시 중요한 배경은 인터넷의 법적 지위였습니다.
당시 인터넷은 NSFnet이라는 정부/학술 연구망이었다.
National Science Foundation이 자금을 대고 있었다.
목적은 연구자와 슈퍼컴퓨터를 연결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AUP(Acceptable Use Policy)가 있었고,
상업적 활동은 사실상 금지돼 있었다.
Marc의 말대로라면,
“납세자 돈으로 연구망 만들었는데 기업 장사에 쓰이면 안 된다”는 논리는 그 자체론 이해할 만했습니다.
하지만 일단 누군가가
“이건 연구실 밖으로 나와 평범한 사람도 쓰게 될 것”
이라는 개념적 점프를 하면, 결론은 달라집니다.
그러려면 상업화가 필요하다.
기업이 붙어야 한다.
광고, 결제, 콘텐츠, 커머스가 따라와야 한다.
Marc는 AOL이 1993년 인터넷에 일반 대중을 연결시킨 순간을
Eternal September라고 설명합니다.
그 전 인터넷은:
소수의 기술자/연구자
지적 유토피아
광고도 없음
상업성도 거의 없음
Usenet 토론이 경이로운 수준
그 후 인터넷은:
보통 사람들까지 연결된 대중 공간
이전 질서는 영원히 끝남
그 결과 품질 저하와 대중화가 동시에 일어남
Marc는 자신은 이 변화를 지지했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그는 초창기부터 mass adoption과 commercialization 편이었습니다.
Netscape는 어떻게 사업이 되었나: Marc는 혼자 인터넷 고객지원도 했다
Marc가 인터넷이 사업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 계기는 의외로
고객지원 메일함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Mosaic 관련 이메일 두 상자를 사실상 혼자 처리했다고 말합니다.
기술지원 문의함
브라우저 버그, 사용법, 각종 질문이 몰려옴
상업적 사용 라이선스 문의함
Mosaic의 원래 라이선스는 상업적 사용이 금지 또는 모호했기 때문에,
회사들이 “우리가 돈 내고 써도 되냐”고 메일을 보냄
Marc는 기술지원 메일을 통해
“소비자 사용자가 폭발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었고,
라이선스 메일함을 통해
“기업들이 돈을 내고라도 이걸 쓰려 한다”는 현실을 봅니다.
그가 기억하는 웃긴 사례도 나옵니다.
사람들은 CD-ROM 트레이를 컵홀더로 오해했다.
커피를 올려놓고 다시 들어가면 고장 나니까 Marc에게 메일을 보냈다.
Marc는 “그건 컵홀더가 아니라 CD-ROM 드라이브입니다”라고 알려줘야 했다.
이 일화의 요점은 단순한 유머가 아닙니다.
기술자들이 얼마나 사용자 현실과 동떨어져 있는지,
그리고 그 간극이 곧 사업 기회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Marc는 또 NSF에 고객지원 인력 예산을 요청하러 워싱턴까지 갔다가 거절당한 일도 말합니다.
NSF는 연구를 지원하지, 고객지원 데스크를 만드는 기관이 아니다.
그 거절로 인해 Mosaic는 학술 프로젝트에 머무르지 못하고,
오히려 회사가 될 길로 밀려갔다.
그리고 이렇게 결론 냅니다.
press는 초기에 “인터넷은 공짜인데 이 회사가 어떻게 돈을 버냐”고 비웃었다.
이건 사업이 된다.
Netscape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 브라우저 무료, 서버 유료, 그리고 광고·전자상거래까지
Netscape의 초기 사업 모델은 생각보다 넓었습니다.
브라우저는 무료
서버 소프트웨어는 유료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들은 서버 쪽 애플리케이션도 계속 만들었습니다.
온라인 출판 시스템
온라인 신문/잡지 CMS
전자상거래 시스템
각종 웹 운영 소프트웨어
Marc는 심지어 Netscape가 한때 인터넷 최대 광고회사였다고도 말합니다.
기본 홈페이지 트래픽을 가졌고,
초창기 광고 포맷들도 이 주변에서 만들어졌다.
Yahoo가 지나가기 전까지 큰 광고 플레이어였다.
Wall Street Journal을 온라인에 올리는 데도 Netscape 소프트웨어가 쓰였다.
이 대목의 중요한 메시지는 이렇습니다.
Netscape는 단순 브라우저 회사가 아니었다.
인터넷이 돈을 버는 거의 모든 메커니즘을 초기에 실험한 회사였다.
